사설·칼럼 기자수첩

[월드리포트] 이제는 개혁이 필요할 때

윤재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6.06 16:52

수정 2014.06.06 16:52

[월드리포트] 이제는 개혁이 필요할 때

오늘날 선진국들이 운용하고 있는 법과 제도는 거저 이뤄진 게 아니다. 쓰라린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창조적 진화의 산물들이다.

독일 법학자 루돌프 폰 예링의 말처럼 단순한 법조차도 권리를 위해 투쟁한 사람들이 흘린 피의 대가였다.

미국 예금보험공사(FDIC)는 대공황으로 인해 세워졌고 연방재난관리국 (FEMA)은 지난 1979년 드리마일 원전 폭발사고를 계기로 탄생했다. 국토안보부는 9·11 테러 때문에 생겨났다.

선진국은 재앙과 시련이 닥치면 재발 방지를 위해 즉각 개혁적 조치를 취하지만 후진국은 분노만 하고 책임자만 처벌할 뿐 대책 마련에 소홀해 유사한 일들이 반복된다.


한국이 진짜 선진국이 되려면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속담대로 상위 계층인 공직사회부터 혁신해야 한다. 부정부패의 척결과 국가의 기강확립 없이는 미래를 기약하기 어렵다.

다만 당근 없는 채찍은 공염불에 그칠 수 있는 만큼 성공적 개혁을 위해 명확한 신상필벌이 선행돼야 한다. 근무성적이 우수한 공직자들에 대해선 노후보장과 자녀들에 대한 각종 특혜 등 후한 상을 내리고, 죄를 지은 공직자에 대해선 준엄하게 심판하면 기강이 바로 설 것이다.

'깨진 유리창 이론'처럼 사소한 부조리를 간과하다간 겉잡을 수 없는 혼란이 오게 된다. 따라서 국난의 싹이 자라지 못하도록 군납비리나 국가기밀누설 등 국방과 안보와 관련된 범죄는 국가전복이나 반역죄에 준하는 엄벌로 다스리고 식료품과 핵발전소, 건설, 철도 등 대중의 안전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선 대량 살상에 준거하여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

교육 혁신도 급하다. 장차 나라의 동량이 될 아이들에게 올바른 세계관을 갖도록 교육함으로써 정신적 개조를 이뤄나가야 한다.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들은 역사 교육을 통해 어려서부터 확고한 국가관과 주인의식을 심어주고 있다.

학생들의 사회봉사활동에도 역점을 둬야 한다. 하버드나 예일 등 미국의 명문대학들은 학업 성적 외에 리더로서의 자질과 사회봉사활동 경력을 중시한다. 한국도 명문대일수록 양로원과 고아원, 병원, 동물원 등 공공시설에서의 봉사경력을 입학 성적에 더 많이 반영할 필요가 있다. 지도자가 될 사람들은 생명의 소중함과 국민의 애환을 알아야 하며 국가의 재산을 아끼고 사람을 사랑하는 '절용애인(節用愛人)'의 덕을 갖춰야 한다.

대북정책도 혁신해야 할 대상이다. 남북통일은 시대의 요청이자 역사적 사명이다. 그런데 통일의 시계는 거꾸로만 가고 있다. 정권마다 바뀌는 일관성 없는 정책과 임기 내에 가시적 결과를 도출하려는 성급함이 원인이지만 본질적으론 북한을 형제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가족이 아닌데 통일이란 말을 꺼낼 수는 없다.

진정 통일을 원한다면 그들을 사랑하고 고통을 함께 나누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그리고 "통일이 우리에게 어떤 이득이 생길까"보다는 "어떻게 하면 그들을 살리고 도와줄 수 있을까"부터 생각해야 한다.

통일하면 독일을 연상한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결과만 알 뿐 과정은 잘 모르는 것 같다. 서독은 오랫동안 방송과 문화교류 등을 통해 동질성 회복에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정부 차원에선 헌법과 제도, 기구 등 통일에 대비한 인프라를 구축해 놓았다. 그 기저엔 동독인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 있었다. 서독인들은 동독인들이 가난하다고 업신여기거나 깔보지 않았고 가족처럼 따뜻하게 대했다. 진실성이 없었다면 동독의 엘리트층은 쉽게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서독은 통일할 자격이 있었다.

통일은 돈으로만 되는 게 아니다. 첨단 금융기법들을 활용하면 비용부담은 얼마든 줄일 수 있다. 북한의 자산과 남한의 성공 모델을 담보로 하여 국채를 발행할 수 있고 차입매수(LBO) 방식으로 국제 자금을 모을 수도 있다. 북한내 핵심 기업들을 주식회사로 전환시켜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도 있다.

돈보다 중요한 것은 배려하는 마음이다.
동생이 미워도 그 가족에 대해선 어떻게든 돌봐줘야 한다. 그게 순리(順理)다.
민도가 거기까지 이르면 예기치 못한 순간에 통일이 찾아올 것이다.

kis@fnnews.com 강일선 로스앤젤레스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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