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 칼럼] 이카로스의 추락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6.09 17:11

수정 2014.06.09 17:11

[곽인찬 칼럼] 이카로스의 추락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에서 위로 120㎞가량 떨어진 곳에 델포이가 있다. 아폴론 신전이 있는 곳이다. 2400년 전 신탁을 받으러 델포이로 간 소크라테스는 신전에 새겨진 경구를 보고 무릎을 쳤다. 거기엔 '너 자신을 알라'고 적혀 있었다. 원래 이 경구는 신이 인간에 주는 경고문이다. 유한한 인간이 마치 신이라도 된 양 까불지 말라는 경고다.
인간이 신에 대들었다 된통 당한 사례는 그리스 신화에 차고 넘친다.

처녀 아라크네는 길쌈과 자수의 명수였다. 교만해진 그녀는 아테나 여신도 자기 솜씨를 당할 수 없을 거라며 뻐겼다. 노파로 둔갑한 아테나가 아라크네를 찾아가 신에게 용서를 빌라고 권했다. 아라크네는 콧방귀를 뀌었다. 드디어 둘 간에 길쌈·자수의 최고봉 자리를 놓고 한판 승부가 펼쳐졌다. 무엄하게도 아라크네는 신들을 조롱하는 그림을 새겼다. 격노한 아테나 여신이 저주했다. "앞으로 너와 네 자손은 영원히 목을 매고 있게 될 것이다." 여신은 아라크네를 징그러운 거미로 만들어버렸다. 거미가 된 아라크네는 제 몸통에서 실을 뽑아 그 실에 매달렸다.

테바이의 왕비 니오베의 운명은 더 처참했다. 니오베는 아들 일곱, 딸 일곱을 뒀다. 그녀는 아폴론과 아르테미스 남매를 낳은 레토 여신을 깔보았다. 자녀 수 14대 2이니 그럴 법도 했다. 하지만 니오베가 궁술의 신 아폴론의 화까지 돋운 것은 치명적 패착이었다. 그가 쏜 화살이 니오베의 아들 일곱을 차례로 쓰러뜨렸다. 그 충격에 니오베의 남편이자 테바이의 왕인 암피온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래도 니오베는 딸 일곱이 남았다며 뻣뻣하게 굴었다. 이어진 화살이 딸들마저 하나씩 쓰러뜨렸다. 막내딸만 남자 그제서야 니오베가 레토 여신에게 애원했으나 이미 화살은 시위를 떠난 뒤였다. 홀로 남은 니오베는 바위로 변했다. 그 바위에선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렸다고 한다.

인간이 주제 넘게 신에게 대들거나 신의 영역을 넘보는 짓을 휴브리스(Hubris)라고 한다. 우리말로 오만방자하단 뜻이다.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경구는 결국 분수를 지켜 휴브리스를 범하지 말라는 얘기다. 영국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영웅 또는 성공한 사람들이 휴브리스에 빠질 위험이 크다고 말했다. 이때 휴브리스는 자신만이 옳다고 믿는 독선이다.

휴브리스의 전형은 사이비 교주다. 교주는 스스로 신이 된다. 교주에 포섭된 신도들도 판단력을 잃고 휴브리스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기 일쑤다. 과거 수많은 독재·공산정권의 신격화 놀음도 휴브리스의 파생상품이다. 한반도 북쪽에선 지금도 치졸한 휴브리스가 3대째 진행 중이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쓴 '21세기 자본'이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다. 데이터에 일부 오류가 있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열풍은 식을 기미가 없다. 6년 전 금융위기는 뉴욕 월가 나아가 세계 금융시장의 탐욕을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금융계 파워맨들의 천문학적인 연봉·퇴직금도 구설에 올랐다. 국내에서도 대기업 경영자 연봉을 놓고 한바탕 시비가 붙었다. 지금, 왜, 피케티인가. 1%의 휴브리스에 대한 99%의 반감이 그 뿌리다. 평생 경제학을 가르친 박우희 서울대 명예교수는 지난주 한 강연에서 "인간의 오욕 때문에 경제위기 같은 각종 탁류(濁流)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법관 출신 총리 후보가 낙마했다. 돈과 권력을 둘 다 쥐려다 혼쭐이 났다. 재벌가 시장 후보도 맥없이 졌다. 한국의 소득 불균형은 미국에 버금갈 정도로 나쁘다. 통계청 '2013 사회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의 절반이 자신을 하층민으로 여긴다. 이들의 눈에 전관예우 변호사들의 일당 1000만원 벌이는 명백한 휴브리스다.

명장(名匠) 다이달로스가 밀랍으로 날개를 만들었다. 날개를 붙인 아들 이카로스는 신이 나서 하늘에 닿을 정도로 높이 날아올랐다. 그러자 뜨거운 태양이 밀랍을 녹였다. 불쌍한 이카로스는 검푸른 바닷속으로 추락했다.
다이달로스는 화를 부른 제 손재주를 한탄하며 아들의 시체를 거두었다. 분수를 모르고 신의 영역을 넘본 대가는 비참했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한 법이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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