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칼럼] 동부 구조조정 관전기

파이낸셜뉴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7.07 17:04

수정 2014.07.07 17:04

[곽인찬칼럼] 동부 구조조정 관전기

작년 12월 중순, 서울 여의도의 전국경제인연합회 신축 회관 준공식에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모습을 보였다. 구 회장의 전경련 방문은 14년 만이다. 그는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뭐가 그리 감개무량했을까.

외환위기가 터지자 김대중정부는 대기업 중복·과잉 투자를 해소한다며 빅딜에 나섰다. LG와 현대 간 반도체 빅딜도 그중 하나였다. 전경련이 중재자로 나섰다.
LG는 덩치가 큰 LG반도체가 현대전자를 흡수할 걸로 여겼다. 하지만 최후 승자는 현대전자였다. 당시 구조조정 사령탑인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이 "반도체를 포기할 각오를 하시라"고 하자 구 회장은 "허허, 무슨 말씀입니까"라고 응수했다(이헌재 '위기를 쏘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LG반도체는 끝내 간판을 내렸고 현대전자는 하이닉스→SK하이닉스로 살아남았다. 상심한 구 회장은 전경련과 발길을 끊었다. 그 아픔을 씻는 데 14년이 걸렸다.

기업 구조조정은 경영자의 피를 말리는 작업이다. 모든 계열사가 제 자식처럼 귀하다. 채권단과의 마찰은 정해진 수순이다. 누가 자기 자식을 선뜻 내놓겠는가. STX는 한바탕 소란을 피웠다. 이젠 동부 차례다.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사(史)는 알력의 역사다.

외환위기 땐 파산법·화의법·회사정리법이 따로 있었다. 도산 3법은 기업회생보다 청산에 초점을 맞췄다. 김대중정부는 경제에 미칠 충격을 줄이려 회생에 주력했다. 그때 임시방편으로 나온 게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제도다. 2001년 워크아웃을 법적으로 뒷받침하는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이 한시법으로 제정된다. 이 법은 현재 2015년까지 연장된 상태다. 이어 2006년엔 도산 3법을 한데 묶은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통합도산법)'이 나왔다. 통합도산법은 파산법원이 주도하는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규정한다.

그런데 동부그룹을 보면 구조조정 절차가 여간 복잡한 게 아니다. 워크아웃도 아니고 법정관리도 아니다. 대기업의 워크아웃·법정관리는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그래서 정부는 선제적 구조조정 장치를 뒀다. 빚이 많은 기업은 일단 주채무계열로 분리된다. 이 가운데 부실 징후가 짙은 기업은 재무구조개선 약정 리스트에 오른다. 이들은 자금을 지원받는 조건으로 계열사를 팔든 자산을 팔든 자구책을 내놓아야 한다.

자구책 이행이 원활치 않으면 자율협약, 곧 채권단 공동관리로 넘어간다. 자율협약 아래서 은행들은 돈 떼일 것에 대비해 충당금을 쌓는다. 그만큼 기업엔 강력한 구조조정을 요구한다. 동부제철이 바로 이 경우다. 자율협약으로도 안 풀리면 별수 없이 워크아웃 또는 법정관리다.

미국엔 정부가 개입하는 선제적 구조조정이 없다. 부실기업은 곧바로 연방파산법에 따라 청산(챕터 7) 또는 재건(챕터 11) 절차를 밟는다. 우리로 치면 통합도산법이다. 미국은 시장이 부실기업을 그냥 두지 않는다. 부실기업을 노리는 기업사냥꾼들이 도처에서 눈을 부릅뜨고 있다. 여차하면 경영권 침탈도 서슴지 않는다. 굳이 정부가 나서지 않아도 시장에서 자율적인 기업 구조조정이 이뤄진다.

상대적으로 한국 시장은 착하다. 그 공백을 정부와 채권단이 주도하는 선제적 구조조정이 메운다. 일단 채권단에 맡기지만 진척이 없으면 금융당국이 나선다. 그 과정에서 국책 산업은행이 문어발 계열사를 거느리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벌어졌다. 기업 채무를 출자로 전환하면서 생긴 일이다. 이런 부작용은 한 번으로 족하다.

기업 구조조정은 중용의 예술이다. 기업이 너무 버텨도, 채권단이 너무 서둘러도 좋지 않다. 외환위기 땐 정부가 팔을 비틀어 성사시켰다.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제2의 LG반도체가 나와선 안 된다. 대신 기업은 사즉생의 각오로 과감하게 버려야 산다. 전주(錢主) 이기는 빚쟁이 못 봤다.
늑장 부릴수록 더 잃는다. 한국의 기업 구조조정 제도는 나름 틀을 갖추고 있으나 현장의 룰은 엉성하다.
이 룰을 얼마나 빨리 정착시키느냐가 관건이다.

paulk@fnnews.com 논설실장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