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칼럼]

사내유보금 과세 안된다

기업 내 사내유보금을 둘러싼 논쟁이 시끄럽다.

정부가 투자유도를 위해 기업의 사내유보금에 과세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카드를 만지작거리자 재계의 반발이 거센 것. 사정은 이렇다. 기업들이 벌어들인 돈을 풀지 않고 내부에 계속 쌓아둔 탓에 내수시장과 가계로 돈이 흘러가지 않는 소위 유동성 경색 문제를 풀어내겠다는 게 정부의 의도다.

그러나 엄격히 말해 기업 사내유보금에 대해 과세를 적용하는 성급한 조치를 할 경우 오히려 한국경제를 더욱 어려움에 처하게 만드는 독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환자에 대한 적절한 처방을 하기 위해선 명확한 병의 증세를 진단하는 게 우선이다. 기업들이 왜 이토록 많은 돈을 내부에 쌓아두고 있는지 저간의 사정을 살펴보는 게 우선이라는 말이다.

사실 기업은 스스로 투자할 가치가 있는 곳이면 육감적으로 냄새를 맡고 금융권에서 빚을 내서라도 베팅을 하려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반면 투자처에 덫이 쳐져 있다는 걸 감지하면 아예 근처에 얼씬거리지도 않는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를 떠올려보자. 그 시절엔 국내 기업뿐만 아니라 해외의 유수 글로벌 기업들이 수많은 인수합병과 신사업 진출에 열을 올렸다. 덩치를 키우는 게 미덕이 됐던 당시에 투자 수요가 급증하면서 급기야 투자시장은 치킨게임으로 변질됐고 이후 수많은 기업들이 무덤으로 내몰렸다. 당시엔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믿었기에 아낌없이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베팅을 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투자할 곳이나 인수할 매물이 불확실한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게 기업들의 판단이다. 저리로 돈을 빌려준다 해도 베팅할 곳이 마땅치 않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사내유보금에 과세를 한다며 압박해봐야 도대체 어디에 투자를 하겠는가.

대한민국 대표 기업들의 체질도 암울하다.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주요 그룹이 보유한 계열사들은 주로 제조업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중후장대형 제조업과 장치산업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업종들이 지금은 '공룡의 멸종'과 같은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몸집은 커지고 움직임은 둔해졌는데 주변 환경의 변화는 빨라지고 있다. 현대 경영환경은 공룡에게 다이어트를 하든지 다른 종으로 변신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제조업 기반 업종들이 빠진 딜레마다. 그래서 환경변화에 대해 불안하기에 일단 위기상황에 대비해 돈을 축적해놓고 기회가 오면 막대한 비용을 치르면서 변신하겠다는 위기관리경영 모드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상황이 이러한데 기업들에게 무작정 사내유보금을 토해내라는 식으로 압박을 하고 나선다면 이는 기업을 벼랑 끝으로 몰아가는 것과 같다.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와 같은 압박보다 오히려 투자를 유도할 수 있는 정책과 유인책을 내놓는 게 바람직하다. 결국 최고경영자는 스스로 위축되지 않고 기업가 정신을 더욱 단련하는 것과 정부는 기업가 정신을 뒷받침해주는 게 절실한 처방전이다.

jjack3@fnnews.com 조창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