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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시진핑의 ‘大虎 사냥’ 어디까지

김홍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8.01 17:35

수정 2014.08.01 17:35

[월드리포트] 시진핑의 ‘大虎 사냥’ 어디까지

"부패라면 파리(하위직 공무원)부터 호랑이(고위직)까지 모두 때려잡겠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지난해 1월 중국 공산당 중앙규율검사위원회 회의에서 '부패 호랑이'를 잡겠다고 공언했을 때만 하더라도 중국인들과 언론들은 반신반의했다. 시 주석 이전에도 공직자 부정부패 척결에 대한 시도가 몇 번 있었지만 소위 '대호((大虎·큰 호랑이)'라고 불릴 만한 전·현직 실세에 대해 사정의 칼날을 들이댄 적은 없다.

하지만 시 주석의 이 같은 발언은 취임 당시부터 철저하게 계산된 것이었다.

시 주석 체제가 들어선 지 불과 한 달 만인 지난 2012년 12월 쓰촨성 부서기였던 리춘청의 낙마 소식이 알려지자 실제 몸통으로 저우융캉 전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겸 정법위원회 서기가 지목됐다. 당시만 해도 저우 전 서기는 시 주석 체제 바로 직전까지 중국의 사법, 공안분야를 사실상 총괄한 최고 지도부 중 한 명이었다는 점 때문에 사법 처리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것이 중론이었다.


하지만 이때부터 대호 사냥을 위한 준비가 차근차근 이뤄지기 시작했다.

최근 중국 공산당 중앙문헌연구실이 시 주석의 어록을 모아 발행한 '시진핑, 전면 개혁심화에 관한 논술 발췌편집 자료'에는 "산에 호랑이가 있는 줄 알면서도 기어이 그 산에 오르는(明知山有虎 偏向虎山行) 용기가 요구된다"는 구절이 있다. 시 주석은 중국의 부정부패를 척결하기 위해선 대호 사냥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행동에 옮긴 것이다.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그동안 저우 전 서기의 가족, 측근들로부터 약 1000억위안(약 16조7000억원) 상당의 자산을 압수한 데 이어 구금되거나 조사를 받은 일가 친척과 정치적 동지, 심복, 부하직원 등이 30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저우 전 서기의 부인과 아들, 형제 등 10명 이상이 구금되고 양대 지역.산업 인맥으로 분류된 '쓰촨방'과 '석유방' 인사들도 대거 구속됐다.

베이징 석유학원 출신의 저우 전 서기는 30여년간 석유 분야에서 일해 오면서 많은 측근을 심었고 이 분야를 떠난 뒤에도 10여년간 일정한 이익을 보장 받았으며 아들 저우빈 등 일가족의 돈줄 역할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저우 전 서기는 당 서기로 있었던 쓰촨성을 근거지로 측근 인맥 등을 통해 각종 이권에 개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올들어 저우 전 서기에 대한 사법 처리가 임박해지면서 공산당 원로들이 이를 만류했다는 소식도 외신을 통해 전해졌다.

공산당 원로들은 '정치국 상무위원은 처벌받지 않고 정치국원은 사형당하지 않는다(刑不入常 死不入局)'는 덩샤오핑의 유지를 들어 저우 전 서기에 대한 사법 처리에 반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시 주석은 과거 원로정치로 실각된 후야오방, 자오쯔양 전 총서기의 전철을 밟지 않고 저우 전 서기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이번 일로 중국의 지도자들이 퇴임 후에도 현실 정치에 관여하던 '원로정치'가 사실상 막을 내린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처럼 어려운 정치적 여건 속에서도 저우 전 서기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중국인들은 환호하고 있다. 기자가 만난 한 중국인은 "시진핑은 마오쩌둥 이후 가장 강력한 지도자이며 이번 조치에 중국인들이 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는 "시진핑 기개가 천하를 삼킬 것 같다" "이 시대의 진정한 포청천"이라며 시 주석을 찬양하는 수많은 댓글이 이어지고 있다.

일부에선 시 주석이 '정풍운동'을 과거 자신이 권력을 잡는 데 반대한 저우 전 서기, 보시라이 충칭시 당서기 등 정적들을 제거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기자가 만난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이 같은 사실을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도 시 주석을 찬양했다. 벌써부터 "다음 대호는 누구냐"는 말이 나오면서 원자바오 전 총리, 쩡칭훙 전 부주석 등이 거론되고 있다.
시 주석의 대호 사냥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지켜볼 일이다.

hjkim@fnnews.com 김홍재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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