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칼럼] 금융 보신주의와 관계형 금융

신홍범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8.03 16:59

수정 2014.10.24 18:32

[데스크칼럼] 금융 보신주의와 관계형 금융

박근혜 대통령과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지난달 24일 '금융권 보신주의'를 질타한 이후 금융권 전체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박 대통령 발언 이후 일부 은행은 내부적으로 중소기업 대출을 점검하는 등 앞으로 있을 후폭풍에 대비하는 모습이다.

박 대통령과 2기 경제팀이 왜 갑자기 '금융권 보신주의'를 내수 활성화의 걸림돌로 지목했을까.

무엇보다도 금융권, 특히 은행이 그동안 정부에서 강조해 왔던 창조금융과 기술금융을 등한시한 채 담보가 확실한 우량 중소기업에만 대출해 줬다는 데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의 질책에 금융당국도 후속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는 금융기관의 보수적인 자금운용행태를 개선하기 위해 '금융회사 보수적 자금운용행태 개선방안'을 9월 초까지 마련하겠다고 한다. 이 같은 정부의 움직임 속에서 최근 금융감독원이 용어도 생소한 '관계형 금융'을 들고 나왔다.


관계형 금융은 은행이 중소기업과 지속적인 거래, 접촉, 관찰, 현장방문 등을 통해 얻은 연성정보를 토대로 대출과 지분 투자, 재무.회계 등 컨설팅까지 지원하는 것을 말한다. 은행은 지금까지 재무상태나 신용등급 등 정보에 따라 대출을 결정하는 '거래형 금융'에 기초를 두고 영업해 왔다. 이 때문에 성장을 준비하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은 정보가 충분하지 않아 대출에서 담보를 많이 가지고 있거나 오래 거래했던 중소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았다. 관계형 금융은 시중은행처럼 재무상태 또는 신용등급 정보가 축적되지 않은 저축은행에서 많이 이용한다.

금감원은 최근 관계형 금융을 추진하면서 무리한 가이드라인 도입을 검토해 논란이 일고 있다. 금감원은 은행이 전체 신용등급 15등급 중 9~11등급의 중소기업과 협약을 맺고 대출, 지분투자, 경영컨설팅 등에 나서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은행은 지금까지 개인의 경우 7등급, 기업은 10등급까지가 대출 마지노선이고, 그 이하는 연체 및 부도 가능성이 워낙 높아 가급적 대출에서 제외했다. 은행 입장에서는 금감원이 제시한 관계형 금융 등급 가이드라인으로는 사실상 대출이 불가능하다.

건전성 및 리스크 관리를 '금지옥엽'처럼 여겨온 금감원이 왜 이런 현실을 몰랐을까, 아니면 알면서도 '성과주의'에 매몰돼 모른 체했을까.

과감한 대출(?)에 대해 면책권을 주자는 얘기도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정부 당국이 금융사의 과감한 대출에 인센티브를 주거나 책임을 면제해 주는 대책을 마련한다고 하지만 은행이 경영에 손해를 입힌 임직원에 대해 정말 인사상 불이익을 주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수십년 동안 관행으로 내려온 담보와 연줄 위주의 대출은 분명 금융권이 개선해야 할 과제다. 기업의 재무 및 신용상태와 함께 중소기업의 최고경영자(CEO) 평판 등 연성정보까지 가미한 관계형 금융 도입도 선진 금융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필요한 제도다.

그러나 금융당국의 지금까지 행보를 보면 아쉬운 점이 많다.
박 대통령의 '금융 보신주의'에 대한 언급이 있은 이후 성과주의에 매달려 일 처리가 너무 일방적이고 조급하게 추진된다는 느낌이다. 금융당국은 금융권과 사전에 충분한 논의와 소통을 통해 조율해야만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금융 보신주의도 개선하고 관치도 없애는 금융당국의 현명한 행보를 기대해 본다.

shin@fnnews.com 신홍범 금융부장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