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 칼럼] 배출권 거래제, 왜 지금 우리만?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8.18 17:03

수정 2014.10.24 00:26

[곽인찬 칼럼] 배출권 거래제, 왜 지금 우리만?

'녹색'엔 주술적 힘이 있다. 반대하는 순간 환경파괴자란 낙인이 찍히기 십상이다. 그 맞은편에 시장이 있다. 시장에 반대하면 세상 물정 모르는 이상주의자가 된다. 녹색과 시장이 맞닥뜨리면 어떻게 될까. 혈투 그 자체다. 양보는 없다.
실제 그런 일이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를 놓고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다.

녹색성장의 저작권은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있다. 6년 전 광복절 축사에서 이 대통령은 저탄소 녹색성장을 국정 비전으로 제시했다. 이어 대통령 직속 녹색성장위원회가 출범했고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도 만들어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선진국과 개도국 간 가교 역할에 재미를 붙였다.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Conference of the Parties)에서도 이 대통령은 중재역을 자임했다.

2009년 11월 이 대통령은 '대형사고'를 쳤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는데 2020년 (온실가스) 국가감축 목표를 자발적으로 설정해서 발표하는 놀라운 일을 벌인 것이다. 그것도 BAU(배출전망치·Business As Usual) 대비 30%씩이나 줄이는…몹시도 빡빡한 목표였다."(노종환 '기후변화협약에 관한 불편한 이야기)

국제사회는 박수를 쳤다. 신이 난 이 대통령은 30% 감축 목표를 녹색성장 기본법 시행령(25조)에 담았다. 딴소리 못하도록 대못을 박은 셈이다. 나아가 '온실가스 배출권의 할당 및 거래에 관한 법률', 곧 배출권거래제법을 만들었다. 바로 이 법의 시행일자가 내년 1월이다.

배출권 거래제는 역설 그 자체다. 최근 환경단체들은 최경환 부총리를 직무유기·직권남용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최 부총리가 산업계를 두둔하느라 배출권 할당을 미루는 등 관계 법령을 무시했다는 이유에서다. 배출권 거래제는 이명박 대통령의 작품이다. 4대강을 삽질한 토목의 달인이 환경론자들의 역성을 받는 형국이다.

기후변화협약 스토리를 훑어보자. 브라질 리우에서 협약서가 채택(1992년)됐고 5년 뒤 교토의정서가 나왔다. 일본과 유럽연합(EU)이 앞장섰다. 미국은 마지못해 따라갔다. 중국은 개도국이라며 발을 뺐다. 한국도 개도국 그룹에 속해 급할 게 없었다. 나중에 미국이 본색을 드러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교토의정서에서 탈퇴했다. 캐나다도 빠져나왔다.

주목할 것은 일본의 변심이다. 2010년 멕시코 칸쿤 총회에서 일본은 더이상 교토의정서에 얽매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산파 노릇을 했던 의정서를 스스로 쓰레기통에 처박은 격이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터지자 일본은 더 다급해졌다. 원전 가동을 줄이면 화력발전소를 더 돌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본이 교토의정서를 준수할 가능성은 제로다.

배출권 거래제를 진지하게 실시한 나라는 EU뿐이다.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지기 전까진 그런대로 시스템이 돌아가는 듯했다. 하지만 위기가 터지자 배출권 값이 폭락했다. 지금은 시장 형성조차 힘겨운 실정이다. 미국과 일본의 이탈, 중국의 무관심, 있으나마나한 거래제 탓에 교토의정서는 혼수상태에 빠졌다. 이런 난장판에 우리만 독야청청, 폼을 잡고 있다. 구경꾼들의 박수에 발목을 잡혔다.

배출권 거래제는 서둘 필요가 없다. 내년 파리 당사국 총회에선 2020년 이후 선진·개도국에 포괄 적용할 새로운 룰을 만든다. 재계가 2020년까지 제도 시행을 미루자는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지금은 타이밍이 좋지 않다. 시장 형성도 불투명하다. 자칫 장기 개점휴업 상태인 돼지고기 선물시장 짝이 날지도 모른다. 환경단체들은 차라리 탄소세 도입을 요구해야 한다. 배출권 거래제는 탄소세를 피하려는 편법에서 출발했다. 배출권을 시장에 내다팔 수 있다고 유혹한 건 꼼수다. 탄소 배출이 환경에 나쁘면 응징이 정답이다.

기업의 오염물질 배출을 수수방관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교토의정서에서 탈퇴한 미국은 탄소 배출을 줄일 신기술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결국 승부처는 기술이다. 기술에서 이기는 나라가 녹색산업을 지배한다.
배출권 거래제를 놓고 우리끼리 앙앙불락할 게 아니라 기술에 승부를 걸 때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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