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경제단체

[fn논단] '메이드 인 코리아'와 기업 브랜드

박경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9.19 11:57

수정 2014.09.19 11:57

[fn논단] '메이드 인 코리아'와 기업 브랜드

1880년대 말 영국시장에는 독일 상품이 범람했다. 독일은 영국보다 산업화를 늦게 시작했지만 국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은 독일 기업들은 수출에 열을 올렸다. 독일은 당시 유치산업 보호를 내세워 수입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했지만 영국은 프랑스를 필두로 관세인하 협정을 체결해 자유무역정책을 실행 중이었다. 영국 산업계는 독일 상품의 시장 공략에 불만을 가졌고 영국 정부는 관세를 부과할 수 없어 1887년 상표법(Merchandise Marks Act)을 만들었다. 외국 제조업자들이 저가의 상품을 영국산으로 표기해 시장에 파는 것을 금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 법은 오히려 독일제의 영국 수출을 촉진하게 됐다.
이전에 영국산으로 표기됐던 독일 상품이 '메이드 인 저머니'로 표시되면서 영국 소비자들은 값도 싸거니와 품질도 좋은 독일 상품을 오히려 더 선호하게 됐다.

최근 영국 출장을 다녀온 나는 메이드 인 코리아로 대표되는 국가 브랜드와 삼성, 현대, LG 등 국내 대기업들의 브랜드를 비교해 봤다. 삼성이나 현대, LG가 만든 상품은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면서 각국의 소비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그러나 이런 상품이 한국 기업이 만든 것임을 아는 외국 소비자들은 극소수다. 외국인들에게 물어보면 대개 일본제라 답변한다. 반면에 코리아라는 국가 브랜드는 국내 대기업 혹은 대기업의 상품 브랜드보다 훨씬 뒤처진다. 글로벌 브랜드 평가 컨설팅 회사인 브랜드파이낸스가 집계한 국가별 브랜드 가치를 보면 2013년 우리나라는 16위를 차지했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브랜드 가치 비율은 65%(7750억달러÷1조1980억달러)에 불과하다. 독일이나 스위스, 싱가포르 등은 브랜드 가치가 GDP보다 훨씬 높다. 삼성의 브랜드 가치는 세계 기업 가운데 8위를 차지했다. 국가 브랜드와 국내 기업의 브랜드 격차를 메울 수 있는 묘안은 없을까?

먼저 이런 격차를 왜 메우냐고 반문할 수 있다. 기업이 품질 좋은 제품을 만들어 파는데 구태여 이 기업이 한국기업임을 알릴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세계화의 시대에 기업은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제조 단가를 낮출 수 있는 곳을 찾아가 생산한다. 이런 상황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가 무의미할 수 있다. 국내 기업이 중국이나 베트남 공장에서 물건을 만들면 제조자는 국내 기업이겠지만 제조 국가는 한국이 아니다. 나는 이런 격차를 메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내 기업들, 특히 대기업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성장했다. 지금은 세계 굴지의 기업이 되었지만 기업이 커나가는 과정에서 정부의 지원은 매우 중요했다. 필자와 대화를 나눴던 몇몇 영국 지식인들은 한국 기업의 상품에 코리아임을 알릴 수 있는 표기 방법을 고민해 볼 것을 제안했다.

국가 브랜드를 제고하는 데에는 정부가, 그리고 민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정부가 너무 적극적으로 나서면 오히려 오해를 야기하고 그리 효과도 높지 않다. 반면 민간이 쌓아올린 브랜드를 국가 브랜드와 연계하는 것은 제대로만 된다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외국에 나가 살다보면 시키지 않아도 애국자가 된다. 여러 나라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가 한국인임을 깨닫고 이를 알리려 한다.
국가 브랜드와 민간 기업의 브랜드 격차를 줄일 수 있는 방안도 정부와 기업이 함께 논의해 접점을 찾으면 좋겠다.

안병억 대구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