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여의도에서] 증세, 좀 더 솔직해집시다

김승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9.19 16:38

수정 2014.09.19 17:15

[여의도에서] 증세, 좀 더 솔직해집시다

담뱃값 인상을 놓고 '증세' 논란이 한창이다.

현재 2500원 담배 한 갑에는 1550원(62%)의 세금이 포함돼 있다. 담배소비세가 641원으로 가장 많고 건강증진부담금과 지방교육세도 각각 354원, 321원이다. 국회 동의를 얻어야겠지만 2500원 담배 기준으로 내년부터 담뱃값을 4500원으로 올리겠다는 것이 정부의 생각이다. 4500원에는 73.7%인 3318원이 세금이다. 특히 정부는 이번에 담뱃값을 인상하면서 국세인 개별소비세(594원)를 새로 적용키로 했다.
이를 통해 내년부터 1조7000억원가량의 국세가 추가로 걷힐 것이라는 게 정부의 기대다.

그런데 정부는 담뱃값 인상 이유가 '국민 건강' 때문일 뿐 '증세'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세금이 더 걷히는 것은 인상에 따른 부수적 효과라는 논리다. 새로운 세목을 추가하면서까지 담뱃값을 올려 국세, 지방세 등 세금이 연간 2조8000억원가량 더 들어올 것으로 추정되는데도 말이다. 흡연자가 매일 1갑의 담배를 피울 경우 1년간 이를 통해 내는 세금은 무려 121만원에 달한다. 이는 9억원 아파트를 갖고 있는 집주인이 내야 할 재산세와도 맞먹는 수준이라는 한 시민단체의 분석도 있었다.

담뱃값 인상 발표가 있은 다음 날 정부는 다시 주민세와 자동차세 인상계획도 발표했다.

담뱃값 인상이야 비흡연자에게는 남의 일이지만 주민세는 전 국민에게 해당되는 일이다. 자동차세 인상 역시 자가용 승용차는 제외했다지만 전체 자동차의 23.5%(451만대)에 해당되는 택시, 승합·화물자동차 등의 운전자에게 증세 부담이 고스란히 돌아간다. 이들은 자동차를 수단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서민이 대부분이다.

담뱃값 인상에는 세수를 관장하는 기획재정부와 건강을 담당하는 보건복지부가 공조했다. 주민세와 자동차세는 지방세라 안전행정부가 맡고 있다. 기재부는 하루 차이를 두고 안행부가 관련 세금인상안을 발표한 것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부처 간 사전조율 대상이 아닌데도 하루가 멀다하고 부담스러운 내용이 나가면서 담뱃값 인상에 주민세·자동차세 인상까지 더해지면서 국민에게 '증세'로 비치는 것이 못마땅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기재부 한 고위 관계자는 사석에서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국민 입장에선 기재부냐, 안행부냐를 가릴 바가 아니다. 다 같은 정부이기 때문이다. 또 국세니, 지방세니 구별할 것도 없다. 어차피 세금이 늘면 내 주머니에서 돈이 더 나가기 때문이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증세를 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터라 이 같은 '깜깜이 증세'에 대해 국민이 느끼는 배신감은 상상 이상으로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자. 내년 예산에서 복지부문이 차지하는 비율은 사상 처음으로 30%를 넘었다. 앞으로 현 정부의 핵심 공약인 기초연금을 비롯해 복지 관련예산 지출이 갈수록 증가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내 가장 빠른 고령화 속도가 이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세수는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목표보다 8조5000억원의 세금이 덜 걷혔다. 올해에도 9조원가량이 세수에서 펑크날 것으로 예상됐다. 2014~2018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국세수입은 내년 221조5000억원에서 2018년 272조3000억원으로 연평균 5.9%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입이 점점 증가하긴 하지만 써야 할 돈이 더 느는 게 문제다. 경제 활성화를 위해 확장재정을 편성한 내년에만도 올해보다 20조원의 예산이 더 투입된다.

나라 곳간이 빌 판이니 자칫 맞벌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솔직한 증세 논의가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뻔히 세금을 올려놓고 '증세가 아니다'라는 뻔한 변명을 하기보다는 쓸 돈이 모자라니 고통분담을 같이 하자고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공평과세는 반드시 실현해야 할 명제다.

bada@fnnews.com 김승호 정치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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