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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외부감사인 강제 지정, 같은 꿈 다른 생각

김승중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9.24 17:13

수정 2014.09.24 17:13

[데스크칼럼] 외부감사인 강제 지정, 같은 꿈 다른 생각

#. 1997년 외환위기 때 한국은 주가 급락과 차입금리 급등이라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에 시달렸다. 국제 자본시장이 우리 기업들의 '공식 재무제표'를 불신했기 때문이다. 2001년 미국에서 터진 '엔론 스캔들'은 사상 최대 규모의 회계부정 사건으로 번지면서 미국 기업과 경제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미국 투자은행들의 회계 불투명이 도마에 올랐다. 이처럼 기업 회계의 불투명성은 투자자에게 피해를 줄 뿐 아니라 기업과 경제, 국가경쟁력에 치명타를 가하는 부메랑이 된다.

#. 금융당국이 감사인 강제 지정 대상을 확대한다.
그 출발은 '갑을관계'로 엮여 있는 기업과 회계법인의 왜곡된 구조에서 시작됐다. 지금 회계시장 생태계는 '회계법인(을)'이 일감을 따내기 위해 '기업(갑)'의 눈치를 봐야 한다. 기업들이 '갑'의 입장에서 더 싼값을 부르는 회계법인에 일을 맡기게 되고, 재무상태가 나쁜 기업도 자기 입맛에 맞는 회계법인을 감사인으로 선임할 수 있다. 이런 잘못된 관행이 지속될 경우 회계 투명성 하락은 불 보듯 뻔하다. 그래서 정부는 오는 11월부터 부채비율이 200%를 넘는 등 재무상태가 부실한 기업은 금융당국이 지정하는 외부감사인에게 감사를 받도록 했다. 한국 사회에서 제일 많이 쓰이는 관용어구 중 하나인 '짜고 치는 고스톱'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 금융당국은 감사인 강제 지정제가 정착되면 국내 증시의 취약점 중 하나인 낮은 회계투명성 문제가 해소되고, 외국인 투자가 확대되는 등 긍정적 효과를 낼 수 있다고 강조한다. 맞는 이야기다. 하지만 재계는 볼멘소리를 낸다. 지정요건을 회피하기 위해 기업들은 적극적 투자를 꺼리게 되고 기업경영이 과도하게 보수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첫 번째 이유다. 그 여파로 일자리 창출을 통한 내수 활성화는 먼나라 이야기가 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창조경제를 이끌고 있는 코스닥 및 코넥스시장의 위축이다. 성장기업은 현재의 재무상태보다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미래의 성장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따라서 기존기업보다 재무적 면이 열악해 재무제표만으로 기업의 성장성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특성이 있다. 결국 이를 고려치 않은 획일적인 재무기준 설정은 성장기업 고유의 역동성을 저하시킬 위험이 있다.

#. 회계법인들도 환영일색만은 아니다. 지정제 확대로 인한 금융당국의 일감배분 때문이다. 제도가 도입되면 추가로 감사인 지정 대상이 되는 기업은 100~150개 정도다. 현재 회계사로부터 외부감사를 받은 기업이 약 2만2000개란 점을 감안하면 확대 폭은 크지 않다. 특히 금융당국이 "그간 회계법인의 규모에 따라 강제지정 대상기업을 배정해 줬다. 앞으론 여기에 품질요소를 더하게 된다"고 밝힘에 따라 '일감을 얼마나 받느냐' 여부가 각 회계법인의 능력을 평가하게 된다. 일종의 감사능력 성적표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또 다른 줄 세우기가 우려된다.

금감원은 현재 회계법인을 자산, 회계사 인원수 순서대로 나열한다. 그 후 글로벌 회계법인에 받은 감사품질 점수가 높은 곳을 위주로 가산점을 줬다. 이후 감사인 지정 대상 기업을 자산규모 순서로 그룹화했다.
자산규모가 큰 곳은 대형 회계법인, 작은 곳은 중소형 회계법인이 맡도록 하고 있다. 문제는 품질요소 반영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데 있다.
이 탓에 중소회계법인에선 부실기업만 떠맡게 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sejkim@fnnews.com김승중 증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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