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구순의 느린걸음]

창조경제가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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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경제 공부 다시 해야겠어요. 요즘 창조경제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것 같아요."

최근 만난 한 대기업 임원의 말이다.

얼추 1년6개월여 전이다. '창조경제'라는 낯선 경제정책이 정부의 핵심정책으로 자리 잡으면서 한국인이라면 한번쯤 창조경제가 무엇인지, 정부가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공부하는 게 유행이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10여개 대기업 중심으로 먹고사는 우리나라 경제는 향후 100년 지속적인 성장을 보장하기 어렵다. 탄탄한 중견·중소기업을 키워야 하는데 기존 조선, 철강, 자동차 같은 산업은 새로운 기업이 자라날 토양으로 적합하지 않다. 이 때문에 정보통신기술(ICT)·과학기술을 활용한 새 산업군을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벤처기업들이 창업하도록 지원해 미래 한국 경제를 이끌어갈 후보기업을 수백, 수천개 만들어내는 것. 결과적으로 한국 경제의 체질을 바꾸는 것.'

창조경제 공부가 유행일 때 들었던 어려운 말들을 간단히 정리하면 키워드는 ICT·과학기술, 벤처 지원, 경제 체질변화 정도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 순간 이 키워드 안에 대기업이라는 새 단어가 하나 슬그머니 끼워져 있었다. 대기업이 지원하는 창조경제다.

대기업으로는 안 되기 때문에 근본적 체질을 바꾸겠다는 창조경제를 대기업의 지원으로 해결하겠다는 방법론적 변화가 쉽게 와 닿지는 않는다.

대기업들 스스로도 자신들의 DNA로는 새로운 창조경제형 산업구조 형성에 성공할 수 없다며 신성장사업은 벤처기업으로 분리해 일하는 방식과 의사결정 방식을 벤처기업 방식으로 따라하고 있다. 그런데 창조경제는 다시 대기업을 따라한다. 게다가 창조경제사업을 지원하는 여러 대기업이 창조경제사업을 사회공헌사업의 한 부분 정도로 취급하고 있다. 담당하는 직원도 사회공헌부서의 중간관리급 한둘에 그친다.

결국 1년6개월여 전에 배운 창조경제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진 모양새다.

정부의 역할도 그렇다. 박근혜정부는 창조경제의 엔진으로 미래창조과학부를 만들었다. 창조경제의 기반인 ICT·과학기술 중심의 산업과 시장을 찾아내고, 벤처기업을 키워내는 일을 하도록 '창조경제의 브레인' 역할을 줬다.

그런데 최근 미래부는 창조경제 홍보부 역할만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창조경제의 새로운 동력을 찾아내고 발전시켜야 할 미래부는 모든 직원이 동원돼 창조경제의 성과를 알리러 다니는 데 몰두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자연스럽게 창조경제의 브레인은 기존 기획재정부가 맡고 있다는 게 세간에 떠도는 얘기다.

1년6개월여 전 기자에게 창조경제를 설명했던 한 경제학자는 "창조경제가 위대한 이유는 현 대통령의 임기 안에 구체적 성과가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있는 데도 대통령이 그것을 선택했다는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미래를 위한 체질개선에 자신의 정치적 성과는 뒤로 미뤄놓겠다는 결단이 가장 칭찬할 만한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지금 보이는 창조경제의 변화는 그 위대했던 창조경제의 체질 변화보다는 임기 3년차에 자랑할 만한 성과를 만들기 위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이라도 다시 창조경제의 초심을 점검하고, 세간에 비치는 변화가 창조경제 본류를 해치지 않는지 점검해봐야 하지 않을까?

cafe9@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