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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구순의 느린 걸음] 알아서 불편해진 보조금의 진실

이구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10.16 13:11

수정 2014.10.17 13:06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 내용도 어렵고 이름도 어려운 이 법 얘기로 온 국민의 술자리, 밥자리 뒷담화가 분분하다. 뒷담화는 여러 가지 얘기가 있겠지만 결국 단통법 시행 후 휴대폰 보조금이 줄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단통법 시행 전에는 정말 소비자가 휴대폰 보조금을 많이 받았던 걸까?

예를 들어보자. 이동통신 회사가 한 달 5만5000원씩 요금을 내겠다고 2년간 약정을 맺는 소비자를 유치하려고 한다. 2년간 총 132만원짜리 고객을 유치하려는데 고객이 부담할 휴대폰 값 100만원이 고민이다. 소비자가 한 번에 덜컥 목돈을 내기 부담스러워 소비자가 휴대폰 구입을 망설인다.

그렇다고 휴대폰도 없는 소비자에게 이동통신 서비스를 팔아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때 이동통신회사가 내미는 밑밥이 휴대폰 보조금이다. 이동통신 회사는 132만원을 벌기 위해 소비자의 휴대폰 값 50만원을 미리 내주겠다고 나선다. 미리 내주는 그 50만원 안에는 소비자가 매월 1만원 남짓 할인받을 수 있도록 법으로 정해놓은 요금할인 24만원 남짓이 포함된다. 또 소비자가 낱개로 살 때 100만원인 휴대폰 값을 이동통신 회사는 200만대 이상 팔아주겠다며 10만원 남짓 깎아서 사온다. 결국 이동통신 회사는 보조금을 50만원으로 포장했지만 자신이 부담하는 돈은 정작 16만원 남짓이다. 16만원의 마케팅 비용으로 132만원짜리 고객을 유치하는 것이다.

단통법은 과거 포장으로 가려져 있던 보조금의 내용을 소비자에게 공개하도록 한 법이다. 요금할인이 얼마인지, 이동통신 회사가 마케팅 비용으로 얼마를 쓸 것인지 인터넷에 공시하라는 것이다. 공시를 해놓고 보니 이동통신 회사들의 보조금 수준은 10만원 선. 예나 지금이나 큰 차이는 아닌 셈이다. 정작 이 내용을 알고 난 소비자들은 보조금이 줄어들었다고 아우성이다. 그러나 냉정히 말하면 보조금은 줄어든 것이 아니라 실체가 밝혀진 것이다.

소비자로서 보조금의 실체를 알고 나니 불쾌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실체는 가린 채 포장만 키워 있지도 않은 보조금 혜택(?)을 받는 것처럼 착각하면서 살겠다고 고집부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닐까.

"내가 맛있는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는 이유는 고깃간 주인의 자비심이 아닌 이기심 때문이다." 대학 경제학 교과서 첫 페이지에 나오는 말이라고 한다. 기자 초년병 시절 강한 충격을 받은 말이다. 나는 고깃집 아저씨가 착하기 때문에 내게 좋은 고기를 주는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아저씨는 내가 늘 그 집에서 고기를 사고 굳이 값을 깎아달라고 조르지 않도록 좋은 고기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원리에서 소비자가 혜택을 볼 수 있는 최선의 길은 기업을 경쟁시키는 것이다.
이기심을 자극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통법이 보조금의 실체를 알려줬으니 소비자는 이제 제대로 선택해야 한다.
보조금 많이 주는 이동통신회사와 때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제대로 내게 필요한 서비스를 만들어주는 회사를 찾아 나서는 것이 이동통신 회사의 이기심을 제대로 자극하는 것이다.

cafe9@fnnews.com 이구순 정보미디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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