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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득 칼럼] 나라 땅을 땡처리한 나폴레옹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10.20 17:08

수정 2014.10.20 17:08

[양승득 칼럼] 나라 땅을 땡처리한 나폴레옹

유럽 대륙을 호령하던 프랑스가 신생국 미국에 214만㎢의 광활한 중부 미대륙 땅을 '땡처리'값이나 다름없는 1500만달러에 넘기게 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군사적, 정치적 고려가 우선 계산에 들어갔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근본 배경은 바닥난 나라 금고였다. 왕실의 사치와 낭비벽 등으로 혁명(1789년) 전부터 살림살이에 적자 구멍이 숭숭 나있던 프랑스로서는 체면이고 뭐고 따질 겨를이 없었다. 루이지애나를 중심으로 북쪽으로 캐나다, 남쪽으로는 멕시코와 국경을 맞대고 있던 거대한 땅을 몽땅 사가라며 1803년 통 큰 세일을 해버렸다.

미시시피강 하구의 뉴올리안스 하나만 살 수 있어도 좋겠다며 제임스 매디슨 국무장관을 나폴레옹에게 특사로 보낸 제퍼슨 미 대통령이 오히려 놀랄 정도였다.
오늘날의 아칸소, 미주리, 콜로라도 등이 포함된 노다지 땅의 영토 팻말은 이렇게 매도자의 다급한 자금사정 덕에 졸지에 '아메리카'로 바뀌어 버렸다.

천재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가 자신의 인생 경력에 남긴 최대 오점은 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재무장관을 맡은 것이었다. 파산한 나라의 살림꾼으로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외부에서 공급되던 석탄이 끊어지면서 공장이 멈추고 식량 부족으로 굶어 죽는 사람이 속출하는 상황에서 그의 지식은 공론에 불과했다. 설상가상으로 승전국들이 들이민 전쟁 배상금 요구서는 그를 벼랑으로 몰았다. 조국을 경제난에서 구해 보겠다는 그의 실험은 취임 7개월 만인 1919년 말 막을 내렸다.

돈이 문제였다. 전쟁 영웅 나폴레옹과 천재 학자를 무릎 꿇리고 자존심에 상처를 준 것은 역시 '돈'이었다. 자신의 호주머니가 아니라 나라 곳간이 텅 빈 바람에 국민들의 굶주림을 해결하고 나라 살림을 꾸려갈 재간이 없었던 것이었다. 차이라면 나폴레옹에게는 내다 팔 땅이라도 있었지만 슘페터의 조국은 곳간이 거덜나 있었다는 것뿐이었다.

세계를 주무르는 슈퍼 파워 대국이나 손바닥만 한 땅 위에 갓 세운 나라나 살림의 원리는 모두 같다. 들어오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많으면 반드시 구멍(적자)이 난다. 구멍을 메꾸는 비결도 양쪽이 같다. 빚으로 때우는 것이다. 통증은 없지만 마약처럼 중독성이 강한 남의 돈으로 부도 위기를 그때그때 모면해 가는 것이다.

2014년의 한국은 나라 살림에 켜진 적신호로 곳곳이 벌겋게 물들어 있다. 대책 없이 당겨 쓴 빚 때문이다. 적신호는 갈수록 더 벌개지고 경보음도 요란스럽다. 지자체는 지자체대로, 정부는 정부대로 적자를 겁내지 않는 공짜 파티에 여념이 없어서다. 선거 공약이라는 이름의 덫과 선심성 포퓰리즘, 앞 뒤 재지 않고 우선 쓰고 보려는 무책임이 뒤엉킨 결과다. 그런데도 구멍 난 나라 살림과 쌓이는 빚에 대해서는 누구도 선뜻 입을 열지 않는다.

2013년 말 현재 가계와 기업, 정부와 공기업이 진 빚은 총 3783조9000억원으로 10년 전인 2003년에 비해 2.2배로 늘었다. 국내총생산(GDP)1428조3000억원의 2.65배에 달하는 규모다. 정부의 경우 세입에서 세출을 뺀 재정수지가 2007년 이후 계속 적자다. 경제 살리기에 안간힘을 쓰는 이상 박근혜정부도 임기 내내 적자 수렁에서 헤맬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의 복지 디폴트 선언과 무상보육을 둘러싼 중앙정부-시·도 교육청 간의 떠넘기기 핑퐁, 그리고 연금개혁을 놓고 벌어진 정부와 공무원들의 충돌은 모두 '재정'이 원인이다. 바닥난 곳간을 빚으로 메꾸면서 선진국 흉내를 내려한 데서 온 대가다. 자신들이 쓰고 누리느라 진 빚을 자식에게 떠넘기려는 부모는 없다. 나라도 마찬가지다. 마이너스 통장을 후대에 물려줄 수는 없다.
살림을 알뜰하게 꾸려야 할 책임은 정부와 국민 모두에게 있다. 세금을 더 내든, 아니면 허리띠를 졸라매든 씀씀이의 구조조정을 미뤄서는 안 된다.
"공짜 점심은 없다"는 표현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tanuki2656@fnnews.com 양승득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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