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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보는 배우’ 설경구, 변신의 끝은 어디인가 [인터뷰]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10.24 14:18

수정 2014.10.24 18:20



“특수분장 고충? 박해일에게는 명함도 못내밀어”

지난 2013년 영화 ‘감시자들’, ‘스파이’, ‘소원’으로 관객들에게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한 설경구가 약 1년의 시간이 흘러 ‘나의 독재자’로 돌아왔다. 극중 그는 무명의 연극배우에서 점차 독재자로 변해가는 ‘성근’ 역을 맡아 놀라운 연기변신을 했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진행된 스타엔과의 인터뷰에서 설경구는 특수분장을 감행한 새로운 연기에 도전한만큼 평소 농담도 잘 던지는 여유로운 모습과 달리 꽤 긴장한 모습이었다. 특수분장이 너무 자연스러웠다는 칭찬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환히 웃어 보였다.

◇ 김일성 대역부터 노인을 아우르기까지

그간 작품 속 설경구의 변신은 드라마틱했다. 영화 ‘공공의 적’에서는 형사가, ‘그놈 목소리’에서는 방송국 뉴스앵커가, ‘타워’에서는 소방관이, ‘스파이’에서는 첩보원이 되는 등 여러 가지 캐릭터를 맞춤옷 입듯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나의 독재자’를 통해서는 조금 더 색다른 변신을 꾀했다. 남북정상회담 리허설을 위한 김일성 대역이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연기하게 된데다, 세월이 흘러서는 특수분장으로 노인이 되기도 한 것. 그렇다고 해서 특수분장이 전혀 눈에 거슬리지 않는다. 노인으로 거듭난 설경구만 있을 뿐이다.

“특수분장을 했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 조심하기보다는 막 질렀다. 표정연기에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기에 대신 입 주변은 분장을 못하게 했다. 오히려 분장팀에서 초조해하더라. 특수분장이 잠깐 보수는 되더라도 완전하게 회복은 안 되기 때문에 찢어지면 촬영을 접어야 한다. 그래서 농담식으로 ‘힘들면 이야기해. 분장 찢어버릴 테니깐’이라고 했다. (웃음)”

설경구는 ‘성근’이라는 인물로 분한 건데, ‘성근’은 김일성 대역을 맡는다. 이에 설경구는 이번 작품에서 이중적으로 연기를 해야 했던 셈.

“나는 김일성 대역이 아닌 성근을 연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성근에게 더 초점을 맞췄다. 성근과 나는 김일성 대역을 연습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김일성의 말투를 휴대폰으로 녹음하고, 다시 들으며 연습을 했다. 하지만 김일성 대역이지, 김일성이 아니기에 북한말도 완벽하게 구사하려고는 하지 않았다. 북한말 선생님이 틀린 부분을 지적해주곤 했는데, 나는 김일성이 아니니깐 안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영화 후반부에서 ‘오계장(윤제문 분)’이 ‘성근(설경구 분)’에 비해 늙지 않은 것 같다는 이야기에 “내가 ‘오계장은 늙게 하지마라. 권력은 안 늙는 거 아닌가’라고 제안했다. 그래서 윤제문의 얼굴에는 손에 들어가는 주름 분장이 살짝만 들어갔다”고 비화를 공개하며 관객들이 궁금할 수 있는 점을 해결해주었다.

◇ 모든 공을 박해일에게 돌립니다

설경구와 부자지간으로 처음 호흡을 맞추게 된 박해일은 이미 영화 ‘은교’를 통해 노인연기를 선보인 적이 있다.

설경구는 이를 두고 박해일은 피해자, 본인은 수혜자라고 정의를 내리더니 “특수분장을 배워와서 처음으로 한 게 ‘은교’ 박해일이었다. 당시 송종희 분장감독 빼고 나머지는 보조였다. 그래서 초반에는 10시간 걸렸다더라. 나 같은 경우는 보조 참여했던 친구들이 프로가 돼서 두 손이 여덟 손이 되니 5시간이 줄었다. 그 친구들이 해일이에게 미안해했다”고 전했다.

특수분장 후에는 연기 가능한 시간이 한계가 있기 때문에 몰아서 찍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상대배우의 배려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설경구는 박해일이 아무리 후배라고 해도 미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단다. 하지만 박해일이 특수분장의 경험이 있기에 이해해줘 위안이 됐다며 감사를 표했다.

“특수분장을 하고 나면 최대 8시간 안에 찍어야 했다. 그래서 해일이가 한 신 찍고 오후까지 기다려줘야 할 때도 있었다. 사실 배우 입장에서 연기의 리듬이 깨질 수밖에 없다. 물론 누구나 ‘괜찮다’고 말을 하기는 쉽다. 해일이는 나보다 먼저 해봤기 때문에 단순히 말로만 ‘괜찮다’가 아닌 진심으로 이해를 해줬다. 해일이의 존재가 되게 큰 힘이 됐고, 그래서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다.”

특히 설경구는 박해일이 특수분장을 먼저 해서만이 아니라, 연기적으로도 ‘나의 독재자’의 중심에 있었다고 박해일에게 공을 돌려 눈길을 끌었다.



기특하다던 표정을 짓던 설경구는 “해일이 아니면 시작도, 완성도 못했을 거다. ‘나의 독재자’의 중심을 잡아줬다. 1막에서 2막으로 환기시키는 것도 해일이이지 않나. 촬영하면서도 해일이가 있어서 가능하다고 감독과 이야기를 많이 했다”며 “마지막 장면에서 해일이가 우는 모습이 애기 같아서 어린 태식이와 오버랩이 되더라. 촬영할 때는 아버지로 연기했는데, 볼 때는 아들 입장에서 와 닿았다”고 만족을 표했다.

◇ 진정한 분장의 완성은 ‘연기’

배우들이 연기 잘하는 경지에 오르고 나면 잘하는 정도를 알고, 그 선에서 안주할 수밖에 없다. ‘믿고 보는 배우’로 불리는 설경구에게서도 더 이상 감탄할 일이 있을까 싶었다. 워낙 연기를 잘하는 배우이니 말이다. 막상 ‘나의 독재자’가 베일을 벗고 나자, 설경구를 향한 극찬이 쏟아졌다. 그가 또 다른 소름 끼치는 연기의 경지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극찬에 얼떨떨하다며 쑥스러워하던 설경구의 어떤 점에서 좋았는지를 새겨 듣는 모습에서 진정한 배우로서의 면모가 보였다. “처음에는 연기가 아닌 특수분장에 눈이 갈까봐 걱정했다. 다행히 분장에는 시선 안 뺏기는 것 같아 다행이다. 송종희 분장감독이 정말 잘하는 것 같다. 송종희 분장감독이 명언을 남겼다. ‘진정한 분장의 완성은 연기다. 난 도움 주는 사람일 뿐이다’고 하더라. 아직도 그 말이 머릿속에 남아 있다.”

또한 설경구는 ‘나의 독재자’에서 연기적으로 신경 쓴 점에 대해 “해일이가 등장하는 2막에서 성근이 김일성 대역에서 못빠져 나온 건지, 안 빠져 나온 건지 고민을 많이 했다. 촬영할 때마다 감독에게 ‘지금도 연극하는 거지?’라고 묻고는 했다”고 회상했다.

아울러 “공연도 돌아갈 수 없고, 아들에게도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지 않나. 70%는 안 빠져나온 걸로 생각하고 연기했다. 그래서 노인 성근에게서는 뚝뚝 끊어지는 연극 톤이 나온다. 아직도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간절하게 끝까지 잡고 있었던 것 같다”며 “그래서 아들에 대한 아픔, 미안함으로 눈을 못본다. 연기하는 동안 해일이를 바라보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엔딩신이 명장면으로 꼽히고 있는 가운데 설경구 역시 이 장면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촬영하는 동안 엄청 예민했고, 감독과 부딪히기도 했단다.

“제일 중요한 장면이다 보니 모두가 예민했던 것 같다. 나 역시 꽤 날카로웠다. 감독의 요청도 다 예민하게 받아들여졌다. 해일이라도 같은 공간에 있었으면 중재해줬을 텐데 다른 곳에 있었다. 하하. 엔딩신이 망쳐지면, 영화 자체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끝에 찍었기에 공든 탑이 무너질까봐 더 몰입했다.”

마지막으로 설경구는 ‘나의 독재자’에 대해 “아버지와 아들 이야기는 많지만, ‘나의 독재자’는 색다르게 풀어냈다. 역사적 사실에 부자지간의 이야기를 넣어 풀어가는 과정이 매력적이다.
이해준 감독의 ‘천하장사 마돈나’도 독특하지 않았나. ‘나의 독재자’에서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특이하게 그려냈다. 그 과정에서 부성애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고 자부했다.


한편 ‘나의 독재자’는 대한민국 한복판, 자신을 김일성이라 굳게 믿는 남자와 그런 아버지로 인해 인생이 제대로 꼬여버린 아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오는 30일 개봉한다. (사진=이승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스타엔 image@starnnews.com이미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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