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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구순의 느린 걸음] 40년 된 거위의 꿈

이구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10.30 17:28

수정 2014.10.30 17:28

[이구순의 느린 걸음] 40년 된 거위의 꿈

1970년대 후반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국산 기술로 전전자교환기를 만들도록 지시했다. 그러면서 경제개발5개년계획에 전전자교환기(TDX) 개발 계획이 포함됐고 1981년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10번째 전전자교환기 개발국가가 됐다. 우리나라 최초의 정보통신기술(ICT) 정책인 셈이다.

당시 ICT 정책을 담당했던 퇴직 공무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박정희 대통령은 급성장할 ICT 산업을 예측하고 우리나라 기업들이 ICT 시스템을 수출할 수 있도록 하자는 정책목표를 갖고 있었다고 한다.

전 국민적 반대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안정성을 인정받지 못하던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기술을 이동통신 국가표준으로 정했던 것 역시 'ICT 시스템 수출 국가'라는 꿈의 연장선이었다. 세계 최초의 3세대(3G) 이동통신 상용화 역시 이 꿈을 이루기 위한 것이었다.


목표를 원대하게 세운 덕인지 삼성전자, LG전자 같은 전자업체들은 대형 ICT 시스템 기술을 바탕으로 휴대폰 분야에서 탁월한 기술력을 갖게 됐다. 그 결과가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세계 휴대폰 시장을 쥐락펴락하게 만든 것이다.

정권이 바뀌고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우리나라 ICT 산업의 가장 큰 꿈은 ICT 시스템 수출이다. 그러나 40년이 지나도록 이 꿈은 미완이다.

통신 시스템 시장은 워낙 보수적이라 통신업체들이 쉽게 거래처를 바꾸지 않는다. 전 세계 모든 통신사업자는 누구랄 것 없이 완벽하게 안정성이 입증된 장비만 3~4년 이상 시험을 거친 뒤에야 구매한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3G, 4세대(4G) 이동통신 장비를 일부 수출했지만 외국 통신업체는 아직 한국 기업을 주사업자로 써주지 않는다.

이제 그 기회가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5세대(5G) 이동통신 기술을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시연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게다가 SK텔레콤, KT, LG U+ 같은 대형 이동통신회사들이 해외 사업자보다 한 발 앞서 국산 5G 서비스를 시작해 안정성이 인정되면 국산 5G 시스템은 세계로 나갈 교두보를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이 그림이 40년 된 'ICT 시스템 수출 국가' 전략의 완성판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그림 속에 들어있는 ICT 생태계 참여자들이 40년 된 숙원을 이룰 생각보다는 좁아터진 국내시장에서 작은 이익을 챙기겠다며 서로 상처를 내고 싸움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소위 단통법 싸움이다.

생태계 참여자들이 생태계를 파괴하면서라도 끝을 보겠다고 덤비고 있다.

그러나 이 싸움은 승자도 패자도 결국 모두가 패자가 되는 싸움이다. 이동통신 회사가 패자가 되면 5G 시스템을 실험해 볼 장이 없어진다.
제조회사가 패하면 아예 시스템 개발의 여력이 사라진다.

결국 단통법 싸움의 결과는 40년 만에 찾아온 ICT 시스템 수출국가의 꿈을 이룰 기회를 놓치고 모두가 실패자가 되는 것뿐이다.


그래서 단통법 싸움은 승패를 가르기 전에 서둘러 끝내야 한다.

이구순 정보미디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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