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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칼럼] 무상복지 폭탄돌리기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11.10 16:51

수정 2014.11.10 16:51

[이재훈 칼럼] 무상복지 폭탄돌리기

무상급식·무상보육 등 무상복지 부담을 놓고 정치권과 정부·지방자치단체·교육청이 벌이는 이전투구는 지켜보는 국민을 혼란에 빠뜨린다. 모두가 '복지 디폴트(채무불이행)' 운운하면서 책임 공방만 일삼고 있는 탓이다. 무상급식과 무상보육 중 어떤 게 좋은 복지고 어떤 게 나쁜 복지인가. 디폴트에 이르게 한 원인은 무상급식인가, 무상보육인가. 국민 눈에는 똑같은 무상복지일 뿐인데 이런 식의 편가르기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각자의 주장이 워낙 다르니 도무지 뭐가 뭔지 알 수 없다는 반응이 속출한다.

이분법적 접근으로는 답을 얻을 수가 없는 게 당연하다. 무상복지 문제는 여야, 보수와 진보가 진영논리에 따라 충돌해온 이슈다. 야당(새정치민주연합)과 진보진영은 2010년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 공약을 내걸어 재미를 봤고, 이에 당했던 여당(새누리당)은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무상보육(0~5세 보육료 지원) 공약으로 응수했다.
이 때문에 여야는 내 공약은 지키고 상대방 공약은 깎아내리는 데 필사적이다.

문제는 무상급식이건 무상보육이건, 심지어 기초연금이건 재원에 대한 검토 없이 선거용으로 급조된 포퓰리즘 공약이었다는 데 있다. 지자체와 교육청이 먼저 시작한 무상급식도 예산이 부족해 금 간 교실을 보수할 돈을 끌어쓰고 저소득층 학생에 대한 아침 급식을 중단하는 등 온갖 무리가 따랐다. 여기에 무상보육까지 확대시행하니 버텨내기 힘든 게 사실이다.

새누리당 소속 홍준표 경남지사는 지난 4일 "무상급식은 정치적 포퓰리즘"이라며 "내년부터 무상급식 예산을 편성하지 않겠다"고 선언해 논쟁에 불을 질렀다. 전국 시장·군수·구청장들은 "기초연금과 무상보육을 지자체가 더 이상 부담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일부 교육청은 내년 어린이집 예산을 2~3개월분만 지원하겠다며 정부에 공을 떠넘겼다. 각자가 진영논리에 충실하게 선택을 한 셈이다. 서로가 내 자식만 키우겠다는 꼴이다.

정부·여당은 "무상급식은 법적 근거가 없는 것이어서 예산을 의무편성할 필요가 없다"면서 "무상보육 중 누리과정은 영유아교육법 등에 따라 의무적으로 예산을 편성해야 하는 것"(안종범 경제수석)이라고 강조한다. 게다가 한 해 불용예산이 4조원에 달하는 교육청이 돈 없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반박한다.

야당은 무상급식에 무상보육이 끼어들어 지자체와 교육청이 감당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누리과정 때문에 무상급식을 하지 말라는 건 형 밥그릇 빼앗아 동생에게 주는 것"(박지원 의원), "누리과정 예산을 전액 정부가 책임지지 않는 것은 공약 파기"(우윤근 원내대표)라고 목청을 높였다.

일찍이 로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사람은 보고싶은 것만 본다"고 갈파했다. 무상복지 문제가 그렇다. 하나하나 떼놓고 보면 존재의 당위성이 있다. 그러나 돈 감당이 안 되는 걸 어찌 하나. 한 표 얻기 위해 앞뒤 안가리고 포퓰리즘 정책을 쏟아낸 정치권이지만 누구도 '내 탓이오'라고 자성하는 사람은 없다. '네 탓' 공방만 거듭할 뿐 해법을 찾으려는 노력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보나마나 여야는 예산 심의 과정에서 충돌을 거듭하다가 적당히 타협할 것이다.

이쯤 되면 현행의 '보편적 복지' 정책이 지속 가능한지 점검하고 대안을 모색해야 하지 않겠나. '공짜 시리즈'의 재앙은 이미 닥쳤다. 이번 무상복지 대란의 직접적 원인은 세수부족에 따라 정부가 교육청에 내려보내는 내년도 지방교육교부금이 1조3000억원 삭감된 데 있다. 당분간은 세수부족 상황이 이어질 전망이다. 반대로 무상복지 지출은 급속도로 늘게 돼있다. 2010년 무상급식이 시작된 후 올해까지 무상복지에 40조원 넘는 예산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예산정책처는 무상교육에만 드는 돈이 앞으로 연평균 16%씩 늘어난다고 전망했다.

소모적인 정쟁은 그만두고 정부와 여야가 무상복지 정책 전반을 놓고 구조조정에 합의해야 한다. 부잣집 아이는 돈 내고 밥 먹고, 돈 내고 어린이집을 이용하도록 보편적 복지를 선별적 복지로 회귀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여야는 '공약 후퇴'라는 리스크를 짊어지기 싫은지 전혀 생각이 없다. 파국이 와야 움직일건가. 덕분에 죽어나는 건 국민이다.
엉터리 공약에 표를 준 대가라고 하면 할 말이 없다.

ljhoon@fnnews.com 이재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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