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구순의 느린 걸음]

인터넷전문은행, 머뭇거릴 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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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아이폰이 한국에 들어오면서 국내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와 정부, 전문가들은 허탈했다. 면목이 없었다. 아이폰이 들어오기 서너달 전까지만 해도 국내 ICT 전문가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조차 "한국에서는 스마트폰이 자리잡을 수 없다"고 단언했다. 거리마다 한 집 걸러 PC방이 있는데 굳이 조그만 휴대폰으로 e메일 보내고 인터넷 검색을 할 이유가 없다는 게 이유였다.

정작 아이폰이라는 스마트폰이 한국 소비자에게 소개되고 거대한 물결을 만들어내면서 전문가들은 뒤늦게 깨달았다. PC방 숫자가 스마트폰 대세를 왈가왈부할 거리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결국 아이폰이 스마트폰 대세를 몰고온 지 한 달도 안 돼 스마트폰은 한국에 맞지 않는다던 그 많은 전문가는 입을 다물었다.

최근 인터넷전문은행 도입에 대한 논란이 있다. 금융당국 일각에서 인터넷전문은행 도입은 시기상조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당국의 고위 관계자가 "인터넷전문은행을 도입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당장 그런 걸 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물론 여러 가지 걱정은 있다. 금산분리라는 중요한 경제정책의 원칙이 있고 소비자 피해 문제도 나올 수 있다. 그런데 잠깐 멈추고 생각해보자. 인터넷전문은행을 도입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용자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용자가 늘어난다는 말은 그것이 시장이라는 말이고, 그 흐름은 이미 대세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보다 더 명확한 이유가 있을까?

이미 중국의 알리페이, 미국의 애플페이가 국경의 개념 없이 세계를 대상으로 서비스를 시작했다. 알리페이는 단순히 결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사모펀드를 모으고 이를 기업에 투자하기도 한다. 사실상 모바일이라는 도구를 활용해 은행의 모든 사업으로 무섭게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기업가치가 날마다 고공행진하는 이유는 이들이 새롭게 시장을 만들어내고, 그 시장은 이들이 주도할 것이라는 기대를 반영하는 것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다음카카오가 뱅킹 서비스를 내놨다. 한국에서도 알리페이나 애플페이와 견줄 수 있는 서비스가 나오는 것 아니냐는 기대도 섞여 있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실 다음카카오의 뱅킹·결제 서비스는 은행과 카드사의 벽에 둘러싸여 있다. 본격적인 모바일뱅킹이라기보다는 은행·카드사의 영업을 모바일로 대행해 주는 선에서 멈춰 있다.

그러니 다음카카오의 뱅킹은 알리페이의 유연한 시장 확대를 따라갈 수 없다. 결국 시장을 주도하는 것은 꿈도 못 꾼다.

ICT분야의 하루는 다른 산업의 1년과 맞먹는 속도로 변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빠르다. 단순히 기술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시장, 먹거리에 대한 현실적 얘기다.

또 ICT산업은 완벽한 승자독식 시장이다.

일단 대세를 만들고 1등이 된 기업을 후발기업이 따라잡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인터넷 기반 은행은 이미 대세로 자리를 잡았다. 왜 필요한지 따질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하루라도 빨리 대세에 편승해 작은 시장이라도 확보할 수 있는 대안을 고민하는 게 지금 우리 정부에 필요한 자세가 아닐까 싶다.


cafe9@fnnews.com 이구순 정보미디어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