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나루]

사이버감청 유혹에 대한 사법적 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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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가 감독한 '타인의 삶'이란 영화는 통일 전 동독의 비밀경찰 슈타지가 요주의 인물인 한 극작가가 살고 있는 집에 감청장치를 설치,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샅샅이 감시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도청의 유혹은 비단 사회주의 독재체제에서뿐만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도 떨치기 어렵다. 1972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재선을 위해 미 중앙정보국(CIA)이 동원돼 워싱턴에 있는 민주당 선거운동본부에 전화도청을 시도한 '워터게이트 사건'은 대통령을 중도에 하야하게 만들었다. 최근 미국 스노든 사건의 후폭풍으로 영국에서도 불법 감청 논란이 뜨겁다.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는 지난 2일 런던경찰청과 국가범죄수사국(NCA)이 감청장비를 도입해 시민의 통화와 e메일, 문자메시지, 심지어 범죄와 관련 없는 주변 사용자의 통화정보까지 무차별적으로 수집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9월부터 두 달 정도 카톡 감청을 두고 검찰과 카카오톡 사이에 신경전이 벌어졌다. 그 와중에 카카오톡을 떠나 보안성이 뛰어나다는, 독일 메신저 텔레그램으로의 '사이버 망명'이 꼬리를 물었고, 이 사이버 검열 논쟁은 올 국정감사의 최대 이슈가 됐다. 국민은 자신들의 정보를 가지고 수사기관과 인터넷서비스 사업자 사이에 핑퐁 게임하듯 주고받는 설전을 지켜보면서 불안하고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을 것이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집계한 올 상반기 감청 등 제공 현황을 보면 수사기관의 통신감청이 전년 동기 대비 48.2%, 이 가운데 인터넷·e메일 등 인터넷 감청 건수는 무려 54.9%나 늘어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우려스러운 증가의 이면에는 국가기관의 정보 제공 압력에 인터넷서비스 업자가 '적당히 알아서' 협조한 편법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문자메시지와 모바일메신저, 위치정보 등 인터넷 통신수단에는 수사기관, 정보기관이나 사업자의 군침을 돌게 하는 맛있는 소재가 풍성하게 널려 있다. 여기저기서 맛보고, 분석·가공해 그럴듯한 요리로 만들고 싶어한다. 인터넷서비스 사업자가 감청장비까지 갖춰 국가기관의 탈법적인 압력에 굴복한다면 더 이상 서비스 제공자가 아니라 '은폐된 수사기관'의 역할을 수행하는 셈이 된다.

국가기관이나 사업자에 대한 국민의 요구는 국가안전보장을 위해 혹은 중요 범죄수사를 위해 통신내용을 감청, 수색하더라도 법에 정한 요건과 절차를 잘 지켜서 합법적으로 하라는 것이다. 여기서 법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영장 발부나 허가에 있어 중대 범죄의 수사 진행이라는 공익과 침해되는 통신비밀의 자유와 프라이버시를 잘 저울질함으로써 항시 과도의 위험성을 경계해야 한다. 아울러 전방위적인 감청이나 싹쓸이식 압수수색이 이뤄지지 않도록 특정 범죄와의 연관성에 대한 소명과 대상의 특정 여부 등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국민의 기본적 인권과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탄생된 국가권력이 오히려 인권을 침범하기 쉽다. 자유에의 갈망과 이를 억압하려는 국가권력의 의지는 숙명적으로 충돌하게 마련이다. 국가권력의 탈법 유혹을 누가 통제·감시하느냐. 바로 법관이다. 감청이나 수색의 적법성·정당성 담보의 열쇠는 판사가 쥐고 있는 것이다.


국가권력의 오·남용 위험성을 경고한 효당 엄상섭 선생의 '권력과 자유'라는 책 속의 한 글귀가 떠오른다. "국가기관은 절대로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 현실인 만큼 국가기관을 구성하는 자연인의 욕망을 법적으로 구속해 둬야 한다. 법관이 맡은 이 직책을 다하지 못하면 민주주의는 그 기반부터 무너진다."

이주흥 법무법인 화우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