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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식 칼럼] 담합 권하는 나라

정훈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11.13 17:09

수정 2014.11.13 17:09

[정훈식 칼럼] 담합 권하는 나라

4대강사업 입찰 담합, 은행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담합, 보험사 자살보험금 담합…. 요즘 경제.사회분야 뉴스를 들여다보면 하루가 멀다 하고 '담합 적발, 과징금 부과'라는 내용을 접한다.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예전보다 처벌이 강화됐어도 담합이 되레 늘고 있으니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담합을 뿌리뽑으려는 정부의 의지가 약하든가, 아니면 담합을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정책에 허점이 있는 것이다.

개발시대인 1990년대까지도 공공사업에서 담합이 성행했다. 제도가 허술했기 때문이다.
당시엔 건설업계에서 공공공사 수주업무를 담당하는 '업무팀(지금은 공공영업팀)'은 '별(담합으로 형사처벌 받은 것)'이 몇 개냐로 능력을 따지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담합을 둘러싼 비속어나 은어도 많았다. 떡값(담합 후 낙찰받은 쪽이 밀어준 쪽에 대가로 주는 돈)이 담합에서 비롯됐다는 것은 알 사람은 다 안다.

담합, 순우리말로 짬짜미(카르텔)는 특정 사업자끼리 짜고 상품(용역) 가격이나 생산량 등을 조정하는 방법으로 다른 업체와의 경쟁을 제한해 부당이득을 챙기는 것이다. 부당이득의 원천은 국가나 소비자의 부담이다. 시장질서를 해치고 국가와 국민 부담을 키우니 '망국병'이다.

과징금에 입찰제한, 형사처벌까지 담합 처벌은 가혹할 정도다. 그런데도 끊이지 않고 되레 늘고 있다. 올 들어 제재가 완료된 담합사건만 17건(건설사 기준)이다. 2012년(3건)과 지난해(4건)에 비해 크게 늘었다. 과징금 부과액은 8034억8400만원이다. 조사가 진행 중인 사건을 합치면 1조원이 훌쩍 넘는다. 건설분야 담합은 제도적 허점이 수두룩하다. 공공사업 입찰제도는 대부분 품질과 기술력 경쟁보다는 예산 절감을 위한 가격 중심 낙찰방식(최저가낙찰제)이다. 무조건 싼 가격으로 낙찰자를 선정하다 보니 정상적으로 수주해서는 수익은 고사하고 본전도 못 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니 적정 가격에 사업을 따내기 위한 담합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다. '무조건 사업을 따놓고 보자'는 식의 실적주의 기업문화도 문제다.

정부가 담합을 조장하는 측면도 있다. 이명박정부 때의 4대강 살리기 사업, 호남고속철도 등이 '담합의 덫'에 걸려있다. 준공을 앞당기기 위해 다수 공구를 동시에 발주했거나 발주기관이 1개 공구에 1개 건설사만 입찰하도록 했다. 공사를 나눠먹기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의 '보조금 상한제'도 담합을 부른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정부가 보조금 상한을 정함으로써 가격인상 담합을 유도한 셈이다. 서점들의 도서 판매 할인폭을 제한한 새 도서정가제도 같은 맥락이다.

담합은 어느 한쪽만의 문제가 아니다. 뿌리뽑기 위해선 고질적 기업관행과 담합을 부르는 불합리한 정책을 동시에 뜯어고쳐야 한다. 정부의 지나친 시장개입도 담합을 부른다. 시장개입을 최소화하면서 공정한 게임이 이뤄지도록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기업들도 '날로 먹겠다'는 속셈을 버리고 페어플레이 정신을 가져야 한다. 박근혜정부는 '비정상의 정상화'를 외치고 있다. 하지만 당국은 담합 예방 및 근절 대책에는 뒷짐을 지고 있다.
사후에 닦달과 매질만 되풀이할 뿐이다. 비정상의 정상화가 공허한 메아리로 들리는 이유다.
망국병인 담합 근절이야말로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한 꼭짓점에 있다.

poongnue@fnnews.com 정훈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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