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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오바마의 이민개혁법과 표심

김규성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11.21 17:56

수정 2014.11.21 17:56

[월드리포트] 오바마의 이민개혁법과 표심

미국에 와서 가장 의아했던 것 중 하나는 '불법체류자(이하 불체자)'와 관련된 상황이었다. 말 그대로 합법적인 신분이 아니어서 고용은 물론 어떤 경제활동도 어려울 텐데, 이들은 사회 각 분야에서 일하고 은행 계좌를 갖고 있다. 세금도 낸다.

의아했지만 나름 근거는 있었다. 미국에서는 이민법과 노동법, 세법 등은 모두 고유의 권한을 가지며 특별한 민원이나 제보 등이 없는 한 처벌하지 않는다.

이민법에서는 외국인을 이민자, 비이민자(유학생 포함), 불체자로 분류하며 합법적인 이민자 외에는 누구도 경제활동을 할 수 없다.
반면 세법에서는 불체자 개념 없이 미국 내 거주자와 비거주자로 나눈다. 거주자는 투자나 사업은 물론 주택이나 주식매매 등도 가능하다. 때문에 누구라도 경제활동으로 생긴 소득이나 이익에 대해 세금을 내면 문제 될 것이 없다.

불체자 역시 미국 거주자다. 업종 제한은 있지만 세금만 제대로 내면 각종 경제활동을 법적으로 보장한다는 의미다.

노동법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 거주자에 한해 일단 고용한 사람에 대해서는 관련 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오히려 고용주가 배상을 해야 한다. 역시 신분은 문제 되지 않는다.

고용주가 불체자란 신분을 악용해 노동을 착취할 수 없고, 부당한 노동을 강요받거나 임금이 체불된 경우엔 불체자도 이민법과 관계된 불이익 걱정 없이 소송을 진행해 보상받을 수 있도록 법으로 규정한다.

실제로 몇 년 전, 한 회사에서 고용한 한국인 불체자들이 시간외 근무수당 등의 문제로 고용주를 고소한 적이 있었다. 이들은 몇 십만달러의 배상 판결을 받았다.

여기서 최근 미 정가를 뜨겁게 달구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이민개혁행정명령(이민개혁법)에 대한 단초를 읽을 수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500만명의 불체자들을 구제한다는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미 지난 대선에서 미국 내 1200만명에 달하는 불체자들이 벌금을 내고 영어를 배우는 조건으로 시민권 취득 기회를 제공하는 이민개혁법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덕분에 이민사회 유권자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서 당선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에 반대하는 쪽에서는 불체자들이 미국 재원을 소모시키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추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회복 국면에 들어서기는 했지만 아직 미국 경제가 제대로 회복되지 않았고, 실직 미국인들이 아직도 많은데 불체자들에게 일자리를 빼앗겨 오히려 국가 경제에 손해란 주장이다.

최근 중간선거에서 거대 야당이 된 공화당은 정부 셧다운을 통해서라도 막겠다고 강조하고 나섰다.

그럼에도 오바마 대통령은 왜 이런 초강경수를 두는 것일까. 한마디로 표심과 경제적 이유가 가장 크다.

불체자들의 대다수는 멕시코 등 남미에서 넘어온 이들이다. 2008년 당시 후보였던 오바마의 주요 공약 중 하나가 바로 이민 개혁에 관한 것이었고, 라틴계 유권자 가운데 70% 이상이 그에게 표를 던졌다.

때문에 오바마 대통령은 레임덕이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약속을 지켜야만 2016년 대선에서 민주당의 승리를 조심스레 예측해볼 수 있다. 이번 구제 대상자들은 자신에게 혜택을 베푼 민주당의 손을 들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공화당의 반대 역시 강하다.

또한 경제적인 면에서는 상당한 세수를 들 수 있다.
1200만 불체자 가운데 이번 구제 대상인 500만명이 최소 1000달러의 벌금을 내면 50억달러의 세수가 생긴다. 게다가 그동안 각종 경제지표에 잡히지 않았던 수치가 실제 경제활동을 하는 인력으로 대거 영입되면서 파급효과는 더욱 클 수 있다.


이번 조처 이후 오바마 대통령과 야권인 공화당의 첫 번째 힘겨루기 결과가 향후 각종 정책 및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해볼 일이다.

jhj@fnnews.com 진희정 로스앤젤레스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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