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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 신해철이 의료계에 남긴 숙제

정명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11.21 17:56

수정 2014.11.21 17:56

[여의도에서] 신해철이 의료계에 남긴 숙제

마왕 신해철이 큰 족적을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났다.

고 신해철은 지난 10월 17일 S병원에서 장 협착증 수술을 받은 후 가슴과 복부 통증으로 인해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다 그달 22일 병실에서 심정지로 쓰러졌다. 심폐소생술을 받고 혼수상태로 서울아산병원으로 후송된 고 신해철은 곧바로 장절제 및 유착박리술을 받았으나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수술 5일 만인 10월 27일 저산소 허혈성 뇌손상으로 생을 마감했다.

이후 가족들은 발인을 앞두고 의료사고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며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했다. 1차 부검에서 심낭천공 등 새로운 사실이 발견됐다. 국과수는 2차 부검 결과를 다음 주 중에 공개할 예정이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네티즌은 의료사고를 의심하며 인터넷을 달궜다. 실제 그동안 환자들이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이를 밝히기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자료를 보면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환자가 이기는 경우는 1%가 채 안된다. 형사로 이길 확률은 거의 없고 민사에서 겨우 이기는 것인데 승소율을 보면 일부 승소를 포함해서 26% 정도다. 그동안 환자가 소송에서 이길 수 없었던 것은 비전문가인 환자가 전문가인 의사의 잘못을 밝기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논란이 일어나자 의사협회도 나서서 신씨의 사망 의혹을 풀겠다고 나섰다. 협회는 '(가칭) 고 신해철씨 사망 관련 의료감정조사위원회'를 구성해 경찰과 검찰, 관련 유가족과 최대한 협조해 국민이 우려하는 의학적 의혹을 객관적으로 검증하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회에서는 일명 '신해철법(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이 안건으로 올라가 있다.

환자가 의료중재원에 조정이나 중재를 신청해도 병원이 거부하면 조정이 시작되지 않는 현행 제도가 유명무실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다.

지금은 환자가 조정을 신청해도 피신청자인 의사나 병원이 동의하지 않으면 조정절차 자체가 시작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제도가 도입된 2012년 이후 접수된 3021건의 조정신청 중 1787건(59%)은 개시조차 되지 못했다. 특히 의료분쟁 비율이 높은 상급종합병원의 불참 비율(75%)이 높다. 제도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조정절차에 참여하는 병원이나 의사 수가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협은 "조정 당사자인 의료기관이 조정에 응할 의사가 없는데도 절차를 강제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사회적 비용만 증가시킬 것"이라며 반대 입장이다. 또 의료인들이 소송이 두려워서 방어진료에만 전념하게 되면 결국 국민에게 피해가 돌아갈 것이라는 설명이다.

다수의 의사들은 "장유착된 상태에서 소장과 심낭에서 발견된 '천공'은 의료사고가 아니라 수술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합병증이지만 이를 발견해 적절히 조치해 수술을 잘 마무리하는 것이 의사의 책임"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수술 후 장유착이 발생했을 때 적절한 치료법은 금식인데 이를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한 환자의 책임도 일부 있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이 같은 설명이 나온 것도 신씨가 유명인이기 때문이다.


신씨 사망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은 대한의사협회와 더불어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도 환자 감정을 의뢰할 방침이다. 위 축소수술 동의 여부와 금식조치 여부 등을 놓고 환자 측과 의사의 진술이 엇갈리는 가운데 의사협회에만 감정을 의뢰할 경우 감정 결과가 한쪽으로 치우칠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를 수용한 것이다.
신씨의 사망을 계기로 의료사고에서 환자가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될지 자못 궁금하다.

pompom@fnnews.com 정명진 생활경제부 차장 의학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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