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관칼럼]

전환기의 한국경제와 고용·노동정책

필자가 1980년대 중반에 유학차 처음 미국에 갔을 때 눈을 번쩍 뜨게 했던 세 가지가 있었다. 각양각색의 자동차, 대규모 슈퍼마켓, 그리고 현란한 텔레비전 광고였다. 당시 한국에서는 기껏 두세 종류의 자동차가 거리를 달리고 있었고, 상점이라면 동네 구멍가게가 고작이었고, 광고는 촌스럽기 그지없었다. 지금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옛날 일이다.

현재의 우리나라는 30년 전 미국과 비슷한 모습이다. 그러나 동시에 미국과 같은 선진국들이 당시 겪었던 어려움을 고스란히 겪고 있다. 성장률은 떨어지고 소득분배는 악화되어 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의하면 1980년대부터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소득분배가 악화되어 왔는데, 우리나라에서는 1992년을 기점으로 분배가 악화 추세에 들어섰다. 우리는 1990년대를 외환위기의 시기로 기억하지만, 더 큰 맥락에서 보면 이는 경공업이 구조조정을 거치던 시기였다. 중국과 같은 후발 개도국이 본격적으로 세계시장에 진입하면서 우리의 의류, 신발 등 경공업이 가격 경쟁력을 잃고 공장 문을 닫거나 해외로 옮겨갔다. 전체 수출에서 경공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 38%에서 2013년 7%로 줄어들었다. 반면 중화학공업의 비중은 57%에서 91%로 늘어났다.

요즘에는 중화학공업 위기론이 대두되고 있다. 조선, 철강, 석유화학 등 우리 경제의 대들보 역할을 해왔던 산업에서 또다시 후발 개도국의 추격이 거세지면서 우리의 입지가 약화되고 있다. 조선업에서는 이미 몇 년 전 대규모 고용조정이 이루어진 바 있다. 과거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우리나라가 선진국에서 이들 산업을 빼앗아 왔는데, 이제는 우리가 후발 개도국에 넘겨주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심지어 휴대폰과 같은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서도 중국이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하버드 대학교의 리처드 프리먼 교수는 선진국들이 경험하는 분배 악화의 원인을 세계화에 돌린다. 1990년대 들어 중국과 인도, 동유럽 국가가 본격적으로 대외 개방을 추진하면서 세계시장에 참여하는 근로자 수가 15억명에서 29억명으로 두 배 증가했다. 그로 인해 선진국에서는 후발 개도국과 경쟁하는 산업이 쇠퇴하고, 저숙련.저임금 근로자들이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선진국들은 이런 어려움을 1970년대부터 겪어 왔다. 당시 이들을 어렵게 만든 것은 일본, 대만, 한국과 같은 동아시아 국가였다. 이런 어려움에 맞서 많은 선진국들은 경제운용의 패러다임을 바꾸었다. 거시경제에 있어서는 케인즈식의 총수요 관리정책을 버리고 경쟁력 강화정책을 추진했다. 사회부문에서는 복지지출 증가를 억제하고 노사화합을 통한 노동시장 안정을 도모했다. 후자의 대표적인 예가 네덜란드이다.

선진국의 이런 경험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절박함이 덜한 듯하다. 아직도 1980년대의 사고방식이 곳곳에 남아 있다. 노동과 자본은 영원히 적대관계일 수밖에 없으며 제로섬 게임에서 상대방으로부터 더 많은 양보를 얻어내는 것, 아니 아예 상대를 말살해 버리는 것만이 유일한 해법이라는 사고방식이다.
그러나 지난 30년 동안 세계는 이미 변했고 우리나라는 그러한 변화의 중심에 서 있다. 이제는 상생(相生)의 노사문화를 정착시키는 동시에 취약계층 근로자들을 위한 고용서비스 인프라를 확충하고 직업훈련을 내실화하는 것이 정답이다. 고용노동부는 앞으로 이런 방향으로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일 계획이다.

고영선 고용노동부 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