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특별기고] 돼지국밥 할머니의 '세금'

노주섭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11.24 17:15

수정 2014.11.24 17:15

쉽지 않은 몸집줄이기.. 노·노갈등도 있었지만 방만경영 근절에 합의
[특별기고] 돼지국밥 할머니의 '세금'


되돌아보면 길고 힘든 한 해였다.

지난해 12월 11일, 부산항만공사는 매우 충격적이면서도 치욕적인 판정을 받았다. '방만 경영기관'이라는 꼬리표가 달린 것이다. 말 그대로 번 돈을 잘 쓰지 못했다는 평가였다. 중점관리기관으로 분류돼 그 벌칙으로 직원들의 퇴직금, 교육비 등 복리후생비를 깎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얻어온 밥그릇도 덜어내려 하면 어려운 법. 당장 내부에서 반발이 터져나왔다.
과다하다고 지적된 직원들의 복리후생비는 교통비를 제외하면 전체 공기업들의 중간 수준에 불과한데 '방만 경영' 꼬리표는 너무 심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었다.

노조에서는 경영개선 작업에 동참하되 향후 복지혜택의 회복을 약속하라는 이면각서를 요구했다. 상급 노조에서 연대투쟁 지침이 하달되면서는 우려하던 노.노 갈등까지 벌어졌다.

밖으로는 부산시민들과 항만업계 종사자들의 질타가 이어지고 항운노조에서는 '그것 봐라'는 식으로 항만 관련 단체들의 낮은 복지수준과 비교하며 항만공사의 방만경영에 비난의 화살을 퍼부었다.

'창조경제'로 대한민국을 살릴 수 있다면, 부산항만공사를 살리기 위해 '창조적 협력'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협력의 전제조건은 '신뢰'였다.

중점관리기관 선정 직전인 지난해 10월, 선제적으로 '비상경영체제 노사결의'를 맺고 12월에는 '노사공동협력 선언'으로 이어 달렸다. 이렇게 경영진과 노조위원장이 공동으로 직원들을 설득하고 법과 원칙 준수, 이면합의 불가라는 원칙 아래 한 단계씩 전진해 나갔다. 노조에서도 상급노조를 방문해 부산항의 위기상황과 조기 경영개선의 불가피성을 설득해 나갔다.

한 번도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지난한 설득 과정의 키워드는 '돼지국밥집 할머니'였다. 부산항만공사는 수많은 공기업 중의 하나이고, 다른 기관들과 마찬가지로 국민의 세금으로 국민들에게 권한을 위임받아 경영하는 것이다. 부산항만공사가 재정이 구멍이 나면 국밥집 할머니의 주머니에 구멍이 나는 것이고, 장사를 잘해 수익이 많이 나서 국고를 채우게 되면 역시 국밥집 할머니의 앞주머니가 두둑해지는 것이다.

사실 방만경영기관 꼬리표를 떼내기 위한 노사 간 노력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수차례에 걸쳐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협의를 벌인 끝에 지난 2월 공공기관 중 처음으로 방만경영 개선절차를 1차적으로 완료했다. 5월에는 대통령 주재 공공기관 워크숍에서 정상화 우수사례로 발표됐고, 방만경영 해소의 모범기관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 이후 추가 이행과제 개선과정에서 불만들이 다시 터져나오고 7월 노조 총회에서 노사 합의사항들이 부결되는 고통이 있었지만 8월의 2차 총회에서 노사는 '방만경영 정상화 이행'이라는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직원들과 1대 1 면담, 직급별 간담회, 노사실무협의회, 제도개선위원회, 직원고충상담, 노사워크숍, 직원대상 서신발송…. 티끌 같은 작은 노력들이 큰 산을 이뤄낸 것이다.

하지만 숙제는 끝난 것이 아니다. 공기업 개혁, 방만경영 정상화는 이제 단순히 한 기관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경제적 시각으로 보면 너무나도 중요하고 시급한 사안이다.

방만경영 중점관리기관 38개 기관이 개선계획을 제대로 이행하면 아낄 수 있는 국민 세금이 5년간 약 1조원이라고 한다.

이제 공공기관 정상화 계획은 2단계로 접어들게 된다. 기관들은 비용절감과 더불어 생산성 제고를 위한 효율적인 조직운영, 임금체계 개편 등의 추가 과제를 요구받게 될 것이다.

부산항만공사도 노조와 함께 운영해왔던 '비상경영대책위원회'를 '정상화 지속추진위원회'로 개편, 방만경영의 소지를 원천봉쇄하고 외부 자문위원을 보강해 그 투명성을 강화하는 등 국민의 공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부산항은 세계 5위 규모의 글로벌 항구다.
그에 걸맞은 역할을 할 때다. 이제 돼지국밥집 할머니 허리춤 주머니의 해진 부분을 꿰매고 다시 두둑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한다.


돼지국밥집 할머니, 감사합니다. 오늘도 많이 파시고 행복하세요.

임기택 부산항만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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