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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박힌 돌과 굴러온 돌

박경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11.25 16:58

수정 2014.11.25 16:58

[여의나루] 박힌 돌과 굴러온 돌

뼛속까지 예술가인 사람들이 실제로 있다. 삶 자체가 예술로서 예술에 의한, 예술을 위한, 예술의 길을 천직으로 알고 아무리 가난하고 인정을 못 받아도 세상을 탓하기보다는 자신의 표현력 부족이라고 반성하며 열심히 시도하고 노력하는 젊은 예술가가 많다. 이 순수 예술가들은 예술계에 있어 땅속에 박혀 있는 돌로서 예술이라는 순수 문화의 근원을 이루는 주인공들이다.

그런데 지금은 굴러온 돌들이 너무 설쳐댄다.

그 굴러온 돌은 설명하자면 첫째, 원래 예술가였던 사람들이 예술을 포기하고 다른 직업을 가지면서 계속 예술가로 남아 있기를 희망하는 자들이다. 예를 들어 자신의 명함에 교수라고 돼 있다면 이는 예술가보다는 교수를 더 자신의 직업으로 생각하고 있음이다.
이들은 교수라는 직분에만 충실해 주길 바란다. 양다리를 걸쳐 두 곳 모두 성의 없이 대한다면 양쪽 모두의 직무유기인 셈으로, 전지전능한 초능력이 아니고는 양쪽 모두 성공하기는 어렵다. 집중력을 잃은 예술가가 응집력 강한 진정한 예술가라는 박힌 돌을 빼내려 들지 않았으면 한다.

둘째, 원래 다른 전공으로 명망을 쌓은 사람들이 예술인으로 진입하는 경우다. 독일 현대미술의 거장이자 백남준의 스승이기도 했던 요셉 보이스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사람은 예술가"라고…. 옳은 말이다. 예술은 소위 직업적 개념의 예술가만의 전유물이 아니고 만인이 예술을 즐길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성은 자신의 원래 전공분야에서 이루고 예술에 진입함에 있어서도 그 유명세를 옮겨 이용하는 쉬운 방법을 취한다면 이는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는 순수성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예술 사랑보다는 예술가가 된다는 자기 멋과 공명심의 과욕으로 보인다. 예술가라는 직업적 환상을 추구하기 위해 자신의 유명세를 동원해 예술가보다 더 예술가 행세를 하며 예술계의 리더까지 돼 일반인에게 예술을 오히려 가르치려 드는 아이러니도 많다. 그런가 하면 이제 겨우 미술에 입문한 타 전공의 초보자들이 예술가가 되는 역경의 과정이 생략된 채 한참 미술을 배워야 될 수준에서 미술시장에 작품을 팔려고 내놓고 있으며 실제로 작가보다 더 잘 팔리고 있다. 백남준이 언젠가 "예술은 사기다"라고 말했다고 해서 예술가라고 사기를 쳐도 별로 들키지 않으니까 예술가의 길로 들어오는 것을 너무나 쉽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고도의 힘과 기량이 요구되는 야구·축구 등 스포츠에서는 이 굴러온 돌들이 감히 진입할 생각이나 할까? 예술이 그만큼 쉽고 만만한 것인가? 필름 카메라 시대가 가고 디지털 카메라 시대에 접어들어선 현재 사진의 경우는 작가 흉내내기가 더욱 쉽다. 해외에서 찍어온 사진을 프린트해 전시만 하면 누구나 다 사진작가가 되는 것이다. 자신의 이혼 사실을 책으로 펴내면 베스트셀러가 되고 자신의 정치철학을 발간하면 출판기념회를 통해 거금을 챙긴다.
예술은 예술 전공인의 전유물이 아닌 만큼 세상의 누구라도 예술을 즐길 권리가 있지만 감상자의 무서운 눈높이를 고려할 때 발표는 신중해야 한다. 발표는 자신의 보람만이 아니고 예술품에 대한 책임이기 때문이다.
요셉 보이스 같은 세계적 대가도 자신만이 예술가가 아니고 만인이 예술가라고 겸손하게 말하는 것에 비해 자신이 예술가라고 주장하는 분수를 벗어난 굴러온 돌들의 자숙이 요구되며 힘들게 살아가는 우리의 젊은 진정한 예술가 여러분은 이 굴러들어온 돌이 인정되는 이 사회의 병적 현상에 의기소침의 혼돈과 좌절을 느끼지 않았으면 한다.

강형구 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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