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식 칼럼]

수렁에 빠진 통상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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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은 노동의 대가다. 근로자 입장에선 의식주 해결의 가장 기본으로 곧 생활 그 자체다. 요즘 같은 산업화시대에는 기업과 산업, 국가를 움직이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용자와 근로자 간에 가장 중요하고 민감한 문제다. 임금 문제를 어떻게 푸느냐에 따라 근로자 개인은 물론이고 기업과 국가의 장래까지 좌우하기도 한다. 사용자와 근로자 간의 '제값' 공방과 그 결과가 그 이상의 큰 의미를 갖는 이유다. 어찌 보면 간단하다. '일한 만큼'만 주고받으면 된다. 그런데 그 '일한 만큼'이 문제다. 일한 만큼의 '크기'에 대한 생각 차이 때문에 갈등과 함께 파업으로 치닫고 급기야 회사가 망가지는 상황에도 이른다.

경제발전과 함께 사회가 복잡다기화하면서 임금의 종류와 성격도 다양하게 분화하고 있다. 임금은 기본급과 수당, 그리고 상여금으로 이뤄졌다. 세부 항목으로 들어가면 산업형태와 기업 종류 및 규모, 기업문화 등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우리나라는 더욱 그렇다. 법률에서의 임금체계가 시대상황과 산업현장 변화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임금·단체협상 과정에서 노사 간에 해석과 입장 차이가 벌어져 타결이 어려워지고 파업이나 법의 판단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 총체적인 문제가 '통상임금'으로 곪아터졌다. 기업들이 지급해온 상여금과 수당 가운데 어디까지를 통상임금으로 봐야 하는지를 놓고 갈등이 빚어졌다. 그러다 이견을 좁히지 못해 법정다툼으로까지 갔고 대법원 전원재판부가 지난해 12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그리고 1년이 다 됐지만 법적판단에 대한 '해석'과 '파이'를 놓고 되레 공방과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통상임금 문제는 사업장마다 임금·단체협상의 핵심사안으로 부상하며 협상 타결의 발목을 잡고 있다. 연말이 다 됐는데도 통상임금에 발목 잡혀 기업의 절반이 아직도 임·단협을 매듭 짓지 못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니 제일 답답한 쪽은 기업이다. 소비심리 위축과 수출경쟁력 저하 등 대내외적인 위기를 극복하는 데 사력을 모두 쏟아부어도 시원찮을 판인데 1년 내내 임·단협에 사로잡혀 있으니 말이다. 이런 와중에 유사소송에서 법원들의 엇갈린 판결이 잇따르면서 통상임금 협상을 악화시키는 형국이다. 정부도 지난 1월 '통상임금노사지도지침'이라는 것을 만들어 시늉만 한 채 나몰라라다. 대법원이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지만 사업장 빼고는 누구 하나 책임지고 갈등을 중재하거나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려는 모습이 안보인다.

대내외적 여건 악화로 전자.자동차산업 등 경제를 떠받쳐온 동력이 활력을 잃고 있다. 여기에 디플레이션까지 겹치면서 한국 경제가 사상 초유의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이렇듯 갈 길 바쁜 기업의 발목을 잡는 통상임금 갈등에 하루라도 빨리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대법원 판결도 '별무소용'으로 만든 구태의연한 임금체계에서 비롯된 근본적인 문제다. 산업 현장에만 맡겨서는 해결이 안 된다는 것도 확인됐다. 그렇다면 그 꼬인 실타래는 정책적으로 풀어야 한다. 바로 노사 대통합기구인 노사정위원회가 나서는거다.
여기서 통상임금을 포함해 임금체계 전반에 대해 논의하고 합의해서 모든 사업장에 통용될 수 있는 모범답안을 제시해야 한다. 시간이 없다. 당장 지금부터 시작해도 늦다.

poongnue@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