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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 무상급식을 둘러싼 '오리너구리' 논쟁

김태경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11.28 17:41

수정 2014.11.28 17:41

[여의도에서] 무상급식을 둘러싼 '오리너구리' 논쟁

초기 동물학자들은 새끼에게 젖을 빨게하는 동물들을 포유류로, 알을 낳는 동물들은 파충류로 분류했다. 그런데 이런 분류기준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발견된 '오리너구리'는 파충류와 마찬가지로 알을 낳지만 새끼가 나오면 포유류처럼 새끼에게 젖을 물려 키우는 것이 아닌가. 화들짝놀란 과학계에선 이를 놓고 수많은 논쟁이 벌어졌다.

영민한(?)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실수를 덮어버리기 위해 '단공류'라는 새로운 분류항목을 만들어 죄 없는 오리너구리를 여기에 포함시켜 논란거리를 은폐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무상급식을 둘러싼 오리너구리 논쟁이 불붙고 있다. 무상급식을 위한 재원 부족이 근본적 원인으로 꼽히지만 그렇다고 증세는 하기 싫은 여권 및 집권세력의 복잡한 셈법이 논쟁을 키우고 있다.


복잡한 체스판에 발을 들여놓기 싫은 여권은 속편한 재정 측면만 타박하고 있다. 쉽게 말해 돈이 없으니 못하겠다는 논리다. 과학자들이 오리너구리를 모호한 분류항목에 우겨넣어 문제를 해결했듯이 이들도 복지라는 보편적 '가치' 개념을 포기하는 대신 손쉬운 재정이라는 순환논리 속에 복지문제를 쑤셔넣고 문제를 일단락하려하고 있다.

하지만 가치의 문제를 재판도, 배심원의 판결도 없이 가석방의 기회도 주지 않은채 종신형을 내리는 것은 대단히 부당한 일이다. 증세를 정말 못하겠다면 지금까지 기득권으로 변해버린 '감면'에 대해 눈을 돌려보라. 얼마나 많은 세금이 감면이라는 이유로 부당하게 재정에서 빠져나가고 있는지를. 밑 빠진 독에 물붓기 식으로 국세와 지방세를 합쳐 한해 50조원이 되는 엄청난 세금이 감면되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사회적 취약계층을 위한 바람직한 감면정책도 병행되고 있다. 문제는 세금을 충분히 낼 수 있는, 즉 담세력이 83%에 달하는 기업과 종합병원, 공적단체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30년 넘게 세금 한 푼 안내고 버젓이 영업 중이다.

최근 지방세 감면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행정자치부는 이런 특혜성 감면을 더 이상 묵과하지 않겠다며 이를 대폭 정비하는 법안을 국회에 상정시켰다. 이 과정에서 감면을 받고 있는 이들의 반발과 저항이 극심했음은 물론이다.

이 가운데 대학병원 측의 대응 논리가 가관이다. 감면을 철회하면 안 되는 이유로 대학등록금이 오른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그렇다면 그동안 물가상승률 이상 오르며 전국 대학생들의 공분을 샀던 등록금 인상행렬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문제는 이런 기득권화되고 특권적인 감면정책을 국회의원들이 이익단체들의 로비에 밀려 개정안을 다시 원점으로 되돌려 놓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수없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행자부는 이런 감면정책의 정비로 6조원가량의 재원을 확보해 이를 어려운 지방재정에 쓰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실현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증세를 하지 못하겠다면 이처럼 탈세와 감세로 인한 재정 누락에 대한 정비를 통해 재정을 충분히 확보하는게 가능하다. 그런데도 이마저 거부한다면 이는 모든 사회적 가치의 문제를 재정이라는 협소한 틀 안에 가두는 우를 범하는 일이 될 것이다.


사회를 이분법적으로 나눠 쪼개고 세분화해 넝마조각처럼 꿰맞추는 '조립사회'를 만들고 싶지 않다면 이참에 감면정책에 대한 정책조정을 통해 사회재조직화에 시급히 나서길 바란다.

ktitk@fnnews.com 김태경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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