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 칼럼] 2014 오디세이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12.17 17:29

수정 2014.12.17 17:29

정윤회부터 조현아까지.. 웜홀서 빠져나온 듯 혼란

[곽인찬 칼럼] 2014 오디세이

2014년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인터스텔라'처럼 혼란스럽다. 마치 웜홀 속에 들어갔다 빠져나온 기분이다. 많고 많은 인물·사건 중에 10개만 추려보자.

◇정윤회=역대 정권의 황태자·소통령·대군들은 다 끝이 안 좋다. 비선 실세들의 숙명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행복과 국가발전 외에 나머지는 다 번뇌"라고 했다. 그런 박 대통령에게 10년 비서실장 정윤회씨는 번뇌 덩어리다.
읍참마속(泣斬馬謖), 괴롭지만 지도자가 가야 할 길이다.

◇세월호=찬바람 부는 진도 팽목항을 떠나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실종자 가족들이다. 미국은 9·11 테러의 아픔을 애국심으로 한껏 고양시켰다. 한국에선 세월호의 아픔이 고스란히 한(恨)으로 남았다. 그나마 사태가 이 정도로 마무리된 건 '털보' 이주영 장관 덕이다.

◇조현아="정의란 사람들에게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주는 것이다." 마이클 샌델(하버드대)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를 이렇게 정의한다. 최고의 플루트는 최고의 플루트 연주자에게 줘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정의가 부, 타고난 신분, 외모 같은 기준에 따라 차별 적용된다면 부당한 일이다." 땅콩에 집착하거나 거짓말을 일삼는 재벌 3, 4세들은 최고의 플루트를 차지할 자격이 없다.

◇제2 롯데월드=16세기 화가 피터르 브뤼헐은 명작 '바벨탑'에서 인간의 과욕을 비웃는다. 허물어져 가는 탑 아래를 유심히 보면 똥을 누거나 빈둥대는 일꾼들이 보인다. "이는 브뤼헐이 의도한 사회적 저항 메시지의 하이라이트"라는 게 최병서 교수(동덕여대)의 해석이다('경제학자의 미술관'). 말 많고 탈 많은 123층짜리 제2 롯데월드엔 어쩐지 정이 안 간다.

◇관피아=금융위기의 역사를 고찰한 찰스 킨들버거 전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위기를 '질긴 다년생화'라고 불렀다. 그만큼 끈질기게 재발한단 뜻이다. 킨들버거가 한국 금융을 봤다면 관치의 질긴 생명력에 혀를 내둘렀을 게다. 서금회 주변에서 '4대 천왕'의 그림자를 본다. 여론에 밀려 관(官)이 잠시 물러간 자리는 얼씨구나 정(政)이 채웠다.

◇담뱃세=올해 흡연자들은 격투기로 치면 '테이크 다운'을 당한 뒤 난타를 당했다. 불쌍도 해라. 담뱃값이 거의 배 가까이 올랐는데도 정부는 증세가 아니라고 우긴다. 여론도 죄악세 인상엔 관대하다. 졸지에 무상복지 비용을 서민 끽연자들이 대게 생겼다.

◇단통법=대한민국 정부는 바쁘다. 시장에 맡기면 될 일까지 제 일인 양 챙긴다. 대통령이 아무리 규제 철폐를 말하면 뭣하나. 관료들이 현장에서 틀면 말짱 꽝이다. 규제는 호환마마보다 무섭다. 그런데 미래부·방통위 공무원들은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이 지독한 규제라는 걸 알기나 할까.

◇초이노믹스=근래 재상(財相) 중에 최경환 부총리만큼 주목받은 인물은 없다. 초이노믹스란 신조어가 그 증거다. '-노믹스'는 보통 지도자 이름을 딴다. 레이거노믹스, 아베노믹스가 그렇다. 무엄하게도 초이노믹스는 근혜노믹스를 가볍게 제쳤다. 그만큼 최 부총리의 어깨가 무겁다. 설마 빈 수레가 요란한 건 아니겠지.

◇피케티=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이어 이번엔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붐이 일었다. 두 교수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센세이션을 일으킨 나라는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하지 않을까. 그만큼 한국은 정의와 평등에 목말라 있다. 이걸 사회주의적 사고방식이라고 눈을 치켜뜨는 한 양극화 해소는 요원하다.

◇마윈=사회주의 중국에서 마윈(알리바바)·레이쥔(샤오미) 같은 벤처 거부가 줄줄이 탄생했다. 창조경제 백날 말해봐야 소용없다. 전국 방방곡곡에 대기업이 주도하는 혁신센터를 세우는 것도 우습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창조는 벤처의 몫이다. 골방에서 한국판 마윈이 나오는 날, 창조경제는 저절로 된다.


연초 교수들은 올해의 한자성어로 전미개오(轉迷開悟)를 꼽았다. 번뇌에서 벗어나 열반의 깨달음에 이르길 바란다는 뜻에서다.
세상은 정반대로 돌아갔지만 번뇌 하나만큼은 기막히게 맞혔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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