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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세계 석유시장의 구조 변화

박경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12.18 17:04

수정 2014.12.18 17:04

[여의나루] 세계 석유시장의 구조 변화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1960년 사우디아라비아 등 12개국의 원유가격 하락 방지를 위한 가격 카르텔로 출발했으나 1973년 1차 오일쇼크 이후에는 유가 상승을 위한 생산 카르텔로 변질됐다. 1973년 초 배럴당 2달러 수준인 원유가는 1970년대 말 30달러 이상으로 상승하며 세계 질서의 근간을 바꿔 놓았다. 오일쇼크 불경기 속의 고물가, 즉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이 케인스 이론으로는 설명이 안 되자 밀턴 프리드먼 등 통화주의자들이 득세하면서 신자유주의가 세계 경제의 주류 사상으로 자리잡기도 했다.

최근 다시 석유가 세계질서를 흔드는 요인으로 등장하고 있다. 지난 10월 28일 OPEC 총회는 사우디가 주도해 당초 감산할 것이라던 예상을 깨고 기존 공급할당량(쿼터)을 준수하기로 결정했다. 미국 셰일오일.가스 공급 확대로 하락하던 유가는 OPEC 총회 이후 급락하고 있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지난 6월 배럴당 107달러에서 최근 60달러 이하로 떨어지기도 했다. 사우디는 수입 감소를 감수하면서까지 유가를 떨어뜨려 미국 셰일오일.가스 업체를 시장에서 퇴출시키려 하고 있다. 중소기업 중심인 미국 셰일오일.가스 업체의 손익분기점 수준은 배럴당 유가 80~40달러로 추정된다. 사우디는 50달러 이하가 되면 많은 셰일오일.가스 업체가 조업을 중단하리라 예상하고 그 이하까지도 감수하는 것이다. 이 같은 사우디의 전략은 1985년 북해유전 등장으로 유가가 하락하자 공급 확대로 유가를 배럴당 31달러에서 10달러까지 하락시켜 경쟁자들을 굴복시킨 바 있다.

최근의 석유전쟁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비산유국에는 일단 반가운 현상이다. 해외 에너지 의존도가 97%나 되고 세계 석유소비 8위, 원유수입 5위인 우리로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 경제는 유가 하락에 따른 긍정적.부정적 요소가 혼재하기 때문에 과거와 같이 한국 경제에 청신호라고만 볼 수도 없다. 항공.물류.해운 등 운송업계에는 원가 비중이 낮아지는 수혜가 있지만 정유업계에는 실적 악화의 직격탄이 되고 있다. 유가 급락으로 인한 세계경기 위축은 우리 수출에 악영향을 끼친다. 자동차·조선·철강 등 우리의 주력품목이 전체 중동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0%를 넘고 러시아, 베네수엘라, 나이지리아 등에 대한 수출도 적지 않다.

최근 석유시장 구조변화 중 우리에게 가장 의미 있는 것은 미국 셰일오일.가스 덕분에 지난 50년 이상 지속돼온 OPEC 중심의 공급독점체제에 균열이 생긴 것이다. 공급카르텔로 초과이익을 누리던 석유시장에 시장원리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원유가격은 상방경직성을 보일 수밖에 없다. 만일 사우디가 셰일오일.가스 업체들을 무력화한 뒤 원유가격을 올린다고 해도 셰일오일이 다시 생산되기 때문에 과거와는 다를 것이다. 장기적으로 셰일오일.가스 매장량이 세계 최대인 중국도 셰일오일.가스 생산에 나설 것이다. 최근 시리아.이슬람국가(IS) 내전 등 중동의 지정학적 변화에도 과거와 달리 원유가격이 상승하지 않은 것이 이를 방증한다. 세계 에너지시장의 패러다임 전환이 왔다.

유가 하락이 단기적으로 한국 경제에 부담이 된다는 분석도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국민의 가처분소득을 증가시켜 소비촉진과 내수확대를 가져다줌으로써 경제가 활성화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우리 경제의 내년 성장률을 3.5%로 하향 조정해 발표하는 등 우리 경제가 순탄치 못할 것이라고 전망하는 가운데 다가온 최근의 유가 하락을 잘 활용하면 우리에게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1980년대 중반 저유가.저금리.달러가치 하락 등 3저 효과로 우리 경제는 비약적 발전을 했다. 이제 다가오는 2015년 새해는 양의 해다.
그것도 운세가 가장 좋은 동물, '청양의 해'라니 유가 하락으로 인한 싼 기름 값이 어려울 때 우리 경제를 찾아온 행운의 청양이기를 바란다.

윤대희 전 국무조정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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