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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르포] 한국전력공사 위치한 나주 빛가람 혁신도시

정지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12.18 17:48

수정 2014.12.18 22:17

나주시대 문 여는 한전
"아직 기반시설 안 갖춰져 주변 함바집 3곳이 전부"
가로등 세워져 있지만 나주시에 인수 안돼, 밤되면 사방이 어둠뿐

지난 17일 오후 한국전력공사가 들어서 있는 전남 나주 빛가람 혁신도시. 한전 옥상에서 내려다본 주변 풍경은 '혁신도시'라는 이름을 붙이기엔 아직 어색한 모습이었다. 기반시설은 갖춰져 있지 않고 도로에도 통행하는 차가 없어 을씨년스럽다. 사진= 정지우 기자
지난 17일 오후 한국전력공사가 들어서 있는 전남 나주 빛가람 혁신도시. 한전 옥상에서 내려다본 주변 풍경은 '혁신도시'라는 이름을 붙이기엔 아직 어색한 모습이었다. 기반시설은 갖춰져 있지 않고 도로에도 통행하는 차가 없어 을씨년스럽다. 사진= 정지우 기자

【 나주(전남)=정지우 기자】 지난 17일 오전 정부세종청사가 있는 조치원역에서 ITX-새마을호를 타고 2시간40여분을 달려 도착한 전남 나주역. 플랫폼으로 나오자 전국적으로 내리던 눈발은 강한 바람을 타고 그 기세를 한층 더 뽐내고 있었다.

나주역에서 최종목적지인 한국전력공사까지는 10㎞남짓. 20여분마다 한 대꼴로 있다는 버스는 폭설 때문인지 찾아보기 어려웠다.



대기하고 있던 택시에 올랐으나 한전까지는 왕복요금을 내야 한다고 했다. 한전이 입주한 빛가람동은 아직 기반시설이나 유동인구가 적어 다시 빈차로 나올 수밖에 없다는 황당한 이유였다. 편도 1만원씩 2만원이었다.

한전 관계자는 "한전을 비롯해 공기업에 좋은 인상을 심어줘야 하는데 오히려 돈벌이로 생각하는 일부 택시가 있는 것 같다"면서 "한전 비전 중 하나가 나주를 우리나라 최고의 혁신도시로 만들겠다는 것인 만큼 지역주민들도 장기적인 관점으로 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0여분쯤 달리니 광활한 평지에 홀로 우뚝 솟은 한전 신청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국농어촌공사 등 다른 공기업 건물도 보였으나 한전 신청사의 위용은 그 규모 덕에 멀리서도 단연 눈에 띄었다. 오히려 홀로 빛가람 혁신도시에 서있는 듯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예상대로 식당은 이른바 함바집(건설현장 식당) 2~3곳 외에는 없었다. '싼 매물' '원룸' '상담' 등 부동산만 여기저기 즐비했다. 정부세종청사 1단계가 입주하던 지난해 2월 세종시 어진동과 닮아 있었다.

한전 관계자는 "보통 아침, 점심, 저녁 모두 구내식당에서 이용한다"면서 "식당을 가려면 나주역까지 2만원, 광주시내까지 3만원을 택시비로 내야 하고 시간도 오래 걸려서 어쩔 수 없다"고 토로했다.

빛가람 혁신도시의 도로를 오가는 차량은 덤프트럭과 레미콘이 대부분이었다. 점멸 신호등은 안중에 없는 듯 보행로 쪽으로 먼지.흙탕물과 뒤섞인 눈 폭탄을 내던지며 질주했다. '위험'이라는 단어만 떠올랐다.

밤이 되면 이 거리는 더욱 공포로 변한다는 게 한전 직원들 말이다. 주변에 상가 등이 없는데다 가로등마저 작동되지 않아 칠흑 같은 밤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11일 오후 11시30분께 빛가람대로에서 식사를 하고 귀가하던 한전 차장급 직원이 지나던 승용차에 치여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당시에도 가로등은 작동하지 않았고 가해자는 "어두워 보지 못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전 관계자는 "가로등은 기관별로 관리해야 하는데 한국토지주택공사가 가로등을 건설해놓고 아직 나주시에 인수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면서 "해가지면 원룸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고 하소연했다.

여직원들은 심리적으로 보다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전은 여직원들에게 호루라기나 휴대용 손전등 등을 선물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식당도 부족한데 세탁소나 약국, 병원, 교육시설 등은 기대조차 하기 힘들다. 일부 직원은 자녀 교육 때문에 나주가 아니라 20여㎞ 떨어진 광주에 집을 얻는 직원도 있다고 했다.

주말엔 상황이 좀 더 심각해진다. '빛가람'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유령도시가 된다.

상당수 직원이 상경해서다. 빛가람 원룸지역 편의점 사장은 "보증금 3억원을 주고 들어왔는데 주말이면 손님이 없어 계속 손실을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전 관계자는 "내년 3월 호남고속철도가 개통되면 서울까지 현재 3시간에서 1시간30분으로 줄어들지만 문제는 요금 역시 3만8000원에서 '껑충' 뛸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라며 "굳이 긍정적인 면을 찾으라고 하면 '갈 곳 없는 직원들끼리의 유대 강화' 정도"라고 씁쓸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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