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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지록위마(指鹿爲馬)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12.21 18:04

수정 2014.12.21 18:04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맘때쯤이면 연초의 큰 희망과 포부는 온데간데없고 아쉬움과 후회만 남는 게 인지상정이다. 교수신문은 연초와 연말에 대학 교수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올해의 사자성어를 발표하고 있다. 연초에는 한 해의 화두를 제시하고 연말에는 우리사회 세태를 촌철살인의 문구로 요약한다. 교수들이 느끼는 감회도 보통 사람의 그것과 별다를 게 없는 것 같다. 올 한 해를 정리하는 사자성어는 '지록위마(指鹿爲馬)'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부른다는 뜻인데, 거짓이 판친 우리 사회를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교수들은 세월호 참사, 비선 실세의 국정개입 의혹사건 등에서 정부와 정치권이 사건의 본질을 호도해왔다고 지적했다. 지록위마 다음으로 많은 지지를 받은 사자성어는 '삭족적리(削足適履)'다. '발을 깎아 신발을 맞춘다'는 뜻으로 원칙과 합리를 무시하고 억지로 일을 도모하는 것을 비유한다. 교수들이 올 초에 '전미개오(轉迷開悟)', 즉 '미혹한 번뇌에서 벗어나 깨달음을 얻는다'를 선택한 것과 대조된다.

최근 몇 년간 교수신문이 제시한 사자성어는 기대와 실망의 반복이다. 지난해에는 '제구포신(除舊布新·묵은 것을 제거하고 새것을 펼친다)'이 '도행역시(倒行逆施·순리를 거슬러 행동하다)'가 되어버렸다. 2012년에는 '파사현정(破邪顯正·그릇된 것을 깨뜨리고 바른 것을 드러낸다)'에 '거세개탁(擧世皆濁·온 세상이 혼탁하다)'이었고 2011년에는 '민귀군경(民貴君輕·백성은 귀하고 임금은 가볍다)'이나 '엄이도종(掩耳盜鐘·비난이 듣기 싫어 귀를 막지만 소용없다)'이었다.

같은 한자문화권인 중국·일본·대만에는 '올해의 한자'가 있다. 중국은 인터넷투표로 올해의 한자를 선정하는데 '법(法)'이 가장 유력하다고 한다. 시진핑 주석이 부패분자를 색출·처벌하며 법치를 세우고 있는 것을 반영했다. 지난해 이맘때는 부동산 거품을 상징하는 '방(房·집)'이 선정됐다. 일본은 올해의 한자로 '세(稅·세금)'를 선정했다. 지난 4월 소비세를 5%에서 8%로 인상한 이후 일본 경제는 곤두박질쳤고, 이에 아베 신조 총리는 소비세 추가 인상을 연기하고 지난 14일 총선을 치러 압승했다.
대만은 마잉주 정권에 대한 국민의 분노와 답답함을 담은 '흑(黑·어두움)'을 올해의 한자로 뽑았다.

'다사다난'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만큼 혼탁한 갑오년이 저물고 있다.
을미년에는 지록위마, 도행역시 같은 좋지 않은 말들이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나라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쉽지 않을 것 같다.

ljhoon@fnnews.com 이재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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