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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풍연 칼럼] 헌재 불신은 위험하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12.22 16:47

수정 2014.12.22 16:47

통진당 해산 결정 존중해야.. 양비론 펴는 것 옳지 않아

[오풍연 칼럼] 헌재 불신은 위험하다

헌법재판소가 요술 방망이라도 두드린 걸까. 지난 19일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내리자 새삼 주목받고 있다. "그렇게 센 기관인가." 국민마다 한 마디씩 한다. 사상 초유의 재판을 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멀쩡하게 활동해온 정당을 해산시키고, 소속 국회의원 5명마저 직위를 박탈했다. 무시무시(?)한 기관으로 비쳐지기에 충분하다. 그동안 의미 있는 재판을 해 왔어도, 이번만큼 정치.사회적 파장은 크지 않았다.


헌법재판소는 일반 법원과 다르다. 우선 헌법에 합치되느냐 여부부터 판단한다. 헌법을 최우선 가치에 두는 것이다. 법률관계에 다툼이 생기면 법원의 재판을 통해 해결한다. 그런데 법률관계의 근거가 되는 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는 잘못이 있다고 주장하거나, 국민의 자유를 제한하는 국가 공권력의 작용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다툴 때는 헌법재판소가 과연 무엇이 헌법에 합치되는 것이고, 합치되지 않는 것인지 판단해 문제를 푼다. 이것이 바로 헌법재판소 본연의 기능이다.

헌법재판소는 9명의 재판관이 있다. 대통령이 3명, 국회의장이 3명, 대법원장이 3명씩 각각 지명한다. 다양성을 존중하기 위해서다. 행정.사법.입법을 망라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재판관마다 성향이 다를 수밖에 없다. 보수.진보.중도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심판 사건 선고를 앞두고 재판관들의 성향을 분석하는 보도도 잇따랐다. 전망 역시 제각각이었다. 5대 4로 기각될 거라니, 6대 3으로 인용될 것이라는 등의 분석이 나왔다. 그러나 결과는 8대 1.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결과였다. 충격이 컸음은 물론이다.

1987년 민주화운동에 이어 헌법재판소가 이듬해 9월 첫 문을 열 때는 그리 주목받지 못했다. 법조인들도 헌법재판소 재판관보다 대법관을 훨씬 더 선호했다. 대우는 둘 다 똑같다. 장관급의 예우를 받는다. 중요한 사건은 재판관 6인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법률의 위헌결정, 탄핵의 결정, 정당해산의 결정, 헌법소원에 관한 인용결정을 하는 때, 종전 헌법재판소가 판시한 헌법 또는 법률의 해석이나 적용에 관한 의견을 변경하는 경우 등이다.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심판 사건을 보면서 느끼는 바가 많다. 재판관들의 결정은 존중하는 것이 마땅하다. 만약 그것을 부정한다면 헌법재판소의 기반이 흔들리게 된다. 민주주의도 설 땅이 없어진다. 하지만 아쉬움도 많이 남는다. 우리 사회가 정당해산이라는 초강수의 결정을 내릴 만큼 그렇게 허약한가 하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국민들도 그런 점은 인정하고 있는 것 같다. 통합진보당이 예뻐서가 아니다. 그들(국회의원)도 민의에 의해서 뽑았는데 사법적 잣대를 꼭 들이대야만 하느냐는 논리다.

헌재의 결정을 놓고 계속 왈가왈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보다 냉철하게 볼 필요가 있다. 시대가 바뀌었다고 해도 북한은 여전히 위협적인 존재다. 그런 북한을 추종한다면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우리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본다. 그렇다고 헌재의 결정은 영구불변이 아니다. 또 바뀔 수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북이 화해하고, 통일을 앞당겨야 한다. 그때까지만이라도 이번 결정은 존중돼야 한다.

통합진보당은 그렇다 치자. 하루 아침에 의원직을 상실했으니 그 충격은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통합진보당 전 의원 5명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서울행정법원에 '헌법재판소 결정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하고, '국회의원 지위 확인 소송'을 내는 것은 나무랄 수 없다. 그러나 야권 및 진보진영이 "통진당도 문제지만 헌재의 결정도 무리였다"며 양비론을 펴는 것은 옳지 않다.
'제 식구 감싸기'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간 자칫 공멸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사법 불신은 또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poongyeon@fnnews.com 오풍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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