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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 정부와 이통사의 '보조금 숨바꼭질'

황상욱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12.26 17:39

수정 2014.12.26 17:39

[여의도에서] 정부와 이통사의 '보조금 숨바꼭질'

2002년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주연의 '캐치 미 이프 유 캔(Catch me, If you can)'이라는 영화를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난다. 제목을 한국말로 의역하면 '나 잡아봐라~' 정도 아닐까 싶다. 이 영화는 희대의 사기범이자 위조범인 프랭크 에버그네일 주니어라는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했다. 그는 중학생 정도 나이인 16세에 이미 위조 수표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를 잡기 위해 미국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이 대거 투입됐지만 이 사기범은 5년여 동안 유유히 26개 나라를 돌며 비행기 조종사, 변호사, 의사 등으로 위장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4년 1월 이동통신사를 옮겨도 사용하던 전화번호를 그대로 쓸 수 있는 번호이동성 제도가 시작됐다.
SK텔레콤, KT, LG U+ 이동통신 3사의 직영점·대리점·판매점 등 유통망이 본격적으로 폭증한 시기다. 편의점보다도 많다는 이동통신 유통점은 번호이동이 생활 속에 자리잡으면서 통신사와 손잡고 각종 편법과 탈법을 통해 가입자를 모집했다.

대란, 페이백, 에이징 등 암호 같은 은어들과 함께 그들만의 세상이 만들어졌다. 그동안 정부도, 법도 이들의 불법·편법을 막기 위해 숱한 노력을 했다. 일부의 이익을 위해 다수의 소비자가 손해를 보는 구조를 방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보조금 상한선을 정하고 과당경쟁에 대한 영업정지 등 강한 제재도 내놨다. 그러나 그때뿐이었다. 어느새 또 다른 편법이 기승을 부리면 한 단계 강한 대책을 만드는 반복이다. 지난 10월 시행된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은 가장 강력한 특단의 조치다. 불법 보조금 지급을 막아 시장을 정상화하고 손해보거나 차별받는 소비자를 만들지 않겠다는 취지였다. 시행 초기 논란도 많았다. 이동통신 3사가 치열하게 싸우는 자본주의 시장의 경쟁을 제한한다는 근본적 물음부터, 당장 스마트폰 값이 비싸게 느껴지자 소비자의 불만도 극에 달했다.

11월 초 일어난 '아이폰6 대란'은 이 법에 사실상 정면도전하는 행위였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이동통신 3사 담당 임원 형사고발이라는 극약처방까지 내놓으며 강한 의지를 재천명했다. 정부의 빠르고 강한 조치에 시장이 움찔하면서 표면적으로는 법이 자리를 잡는 듯 보인다. 그런데 또 시장은 다르게 움직이고 있다. 십수년간 일어났던 편법들이 또 다른 형태로 다시금 일어나는 낌새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고객을 판매원으로 등록시켜 불법 보조금을 주는가 하면 법 취지와 어긋나는 형태로 통신사들이 유통점에 차별적 리베이트를 뿌리고 있다. 번호이동이나 기기변경 고객은 돌려보내고 신규가입 고객에게만 '가성비(가격 대비 높은 성능비)' 좋은 제품을 개통해 준다.

영화 얘기를 다시 하자면 FBI는 결국 희대의 사기범을 잡지만 그의 천부적인 자질을 높이 평가해 그를 FBI 요원으로 채용한다. 그는 각종 위조, 사기와 관련한 매뉴얼을 만들었고 범죄예방 프로그램을 만들어 연간 수백만달러를 버는 굴지의 사업가로 변신했고 FBI도 그를 활용해 다른 범죄를 예방하는 효과를 거둔다.

이동통신산업 역시 되돌아봤으면 한다.
정부와 시장의 끝날 줄 모르는 보조금 숨바꼭질이 결국은 시장의 섭리를 이해하지 않고 책상머리에서 만드는 정책 때문은 아닐까 의심해 본다. '대란' 때마다 한몫 챙겨 도망간 유통망업자를 잡는 데 기운 빼지 말고 조금 더 시장 깊숙하게 들어가 그들의 움직임을 현장에서 파악한 뒤 정책을 만들어야 숨바꼭질의 끝이 보이지 않을까?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의 습성을 잘 알아야 한다.
그래서 호랑이굴에 직접 들어가야 한다.

eyes@fnnews.com 황상욱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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