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 칼럼] 대통령님, 휴가 좀 가세요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12.31 17:30

수정 2014.12.31 17:30

창조경제는 비움에서 출발.. 오바마, 성탄절 17일 재충전

[곽인찬 칼럼] 대통령님, 휴가 좀 가세요

베스트셀러 '담대한 희망'의 주인공답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담대하다. 적성국 쿠바와 전격 국교를 트기로 한 게 좋은 예다. 휴가를 쓸 때도 그는 담대하다. 지금 오바마는 가족과 하와이에 있다. 지난해 12월 19일부터 오는 4일까지 17일짜리 긴 크리스마스 휴가를 냈다. 오바마는 2009년 초 대통령에 취임한 이래 해마다 고향 하와이를 찾았다.
휴가지에서 주로 하는 일은 골프다. 지난달 25일 성탄절엔 말레이시아 나지프 라자크 총리와 '정상회담' 라운딩을 했다. 일도 하고 운동도 하고, 꿩 먹고 알 먹기다.

작년 8월엔 미국 동부 매사추세츠주의 유명 휴양섬 마서스 빈야드를 16일 동안 다녀왔다. 이때 이라크 반군 이슬람국가(IS)가 미국인 기자를 참수하는 일이 벌어졌다. 오바마는 긴급성명을 내고 IS 목표물에 대규모 공습을 감행하라는 명령을 내렸으나 휴가지를 이탈하진 않았다. 야당인 공화당에서 트집을 잡았으나 미국인들은 이동식 백악관의 긴급 대응 시스템에 익숙하다.

사실 다른 대통령들에 비하면 오바마는 약과다. 그는 작년 여름·겨울휴가를 합쳐 '겨우' 33일을 놀았을 뿐이다. 전임자인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8년 동안 533일을 휴가로 썼다. 한 해 평균 67일로 단연 1위다. 로널드 레이건은 390일, 빌 클린턴은 174일이다. 오바마는 임기 6년차인 작년까지 157일을 썼다. 이 추세라면 클린턴은 앞서겠지만 부시·레이건엔 턱없이 모자랄 것 같다.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어떨까. 겨울엔 주로 스위스 알프스를 찾는다. 한 해 전엔 스키를 타다 넘어지는 바람에 목발 신세를 졌다는 게 뉴스가 되기도 했다. 여름휴가 땐 남편과 함께 바이로이트 음악축제를 구경하고 이탈리아 북쪽에 있는 3000m급 산을 오르기도 했다.

이웃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도 휴가 열정이 대단하다. 아베는 지난해 여름 휴가차 야마나시현 별장으로 떠났다. 마침 모리 요시로 전 총리 등과 골프를 칠 때 히로시마에서 집중호우로 산사태가 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아베는 피해자 구조에 만전을 기할 것을 지시한 뒤 계속 공을 쳤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아베는 부득이 총리관저로 복귀했으나 조치를 취한 뒤 그날 밤 별장으로 돌아갔다.

이들에 비하면 박근혜 대통령의 휴가는 너무 짜다. 지난해 4박5일 여름휴가는 내내 관저에 머물렀다. 성탄절 때도 24~25일 이틀 일정을 비우고 잠깐 쉰 게 다다. 미국식 긴 휴가를 권할 생각은 없다. 국민들도 한 해 한달씩 자리를 비우는 대통령을 곱게 보지 않을 거다. 그렇지만 지금보단 휴가를 좀 더 길게, 그것도 시끌벅적하게 가면 좋겠다.

대통령의 휴가는 소비진작에 도움이 된다. 대통령이 휴가지에서 이걸 샀느니 저걸 샀느니 하는 소식이 뉴스에 자주 나오는 게 좋다. 국가원수의 쇼핑 목록은 인기상품으로 뜬다. 대통령이 묵은 곳은 저절로 명소가 된다.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저축의 역설을 말한다. 저축은 개인에겐 좋지만 사회 전체적으론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불황기에 그렇다. 돈이 돌지 않고 벽장 속에 잠기기 때문이다. 소비가 줄면 물건이 안 팔린다. 물건이 안 팔리면 생산이 줄고 생산이 줄면 고용이 준다. 극심한 소비 부진은 디플레이션(저성장·저물가)을 낳는 원흉이다.

일 중독증은 창조경제에 역행한다. 구글은 하루 업무시간 중 20%를 직원들이 마음대로 쓰도록 내버려둔다. 혁신은 비움에서 온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미국 정보기술(IT) 기업 중엔 무한휴가제를 도입한 사례도 있다. 휴가를 가든 안 가든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생각에서다.
세계 최고 수준의 통신·영상기술을 장착한 이동식 청와대에서 대통령이 긴급 사태에 대응하는 모습을 왜 우린 볼 수 없나.

새해엔 더도 덜도 말고 박 대통령이 여름 열흘, 겨울 열흘 휴가를 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 워커홀릭일수록 재충전이 필요하다.
아랫사람들한테도 쉴 틈을 줘야 한다. 고위 공직자 골프 금지령까지 풀어주시면 금상첨화!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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