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사설

[데스크 칼럼] 위험사회와 설득커뮤니케이션

조석장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1.01 16:53

수정 2015.01.01 21:40

[데스크 칼럼] 위험사회와 설득커뮤니케이션

우리는 과학기술 고도화와 풍요로운 물질문명이 만들어 놓은 위험에 언제든지 노출될 수 있는 환경에 살고 있다. 산업화와 근대화를 통한 과학기술 발전이 현대인에게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줬지만 동시에 새로운 위험에 처하게 만든 것이다.

현대사회의 이런 특징 때문에 위기로부터 안전한 조직이나 개인은 없다. 특히 치열한 경쟁만이 존재하는 기업생태계에서는 대형 인명사고, 불법자금 유용, 금융사고, 사이버 해킹, 산업재해, 유해물질 발견 등 위험은 더욱 빈번하게 발생한다.

지난해 우리 기업들에도 많은 위기가 초래됐다. 남양유업의 밀어내기 영업에 대한 사과, 롯데그룹의 안전에 대한 사과, 카드사들의 고객정보 유출에 대한 사과, 코오롱그룹의 경주 마우나리조트 사고에 대한 사과, 판교 환풍구 붕괴사고에 대한 이해 당사자들의 사과, 그리고 땅콩회항으로 연말을 강타했던 대한항공의 사과 등이 이어졌다.



기업 입장에서 위기를 피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사태 수습 과정에서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신속하고 진정성 있는 사과와 보상 및 사후 재발방지책을 마련한 기업은 위기를 잘 극복해낸다. 그러나 위기를 적당히 넘기려고 임기응변식 대응에 나선 기업들은 엄청난 후폭풍에 시달려야 한다.

사고 규모에서만 보면 대한항공 사건은 다른 사건에 비해 심각한 사건이 아닐 수 있었다. 고객의 불편함을 초래했지만 대형 인명사고를 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대한항공의 위기 대응은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을 공중에게서 얻어내지 못했다. 그야말로 '피할 건 피하고, 알릴 건 알린다'는 홍보(PR)의 테크닉으로 대응하려 했던 것 같다.

기업들의 위기대응 사례를 관찰해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실패한 사과는 모두 공급자 시각에서 행해진 것이었다. 소비자, 국민 등 수요자 입장에서 진심을 담은 사과와 이에 상응하는 책임과 보상이 뒤따른 사과는 큰 효과를 봤다. 대한항공의 사과는 전자 쪽이었다.

위기가 발생하지 않은 대부분의 기업은 지난해 사건들을 목도하면서 위기관리 매뉴얼을 다시 한번 가다듬었을 것이다. 그러나 위기관리의 핵심은 테크닉이 아니다.

설득커뮤니케이션학에서는 설득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요소가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첫 번째가 진실성이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태도와 윤리적 자세가 필수적이다. 피설득자의 태도와 행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진정성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유사성이다. 피설득자와 얼마나 비슷하게 느껴지게 하는가 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호감도다. 피설득자에게 얼마나 호의적 감정을 갖게 하는가 하는 것이다. 네 번째는 공신력이다. 설득자의 전문성이 높아 그 분야에 권위를 갖춰야 한다는 점이다. 다섯 번째는 신속함과 과단성이다. 신속하고 과단성 있는 조치는 피설득자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이다.

저명한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현대사회를 '위험사회'로 명명했다.

그는 성찰과 반성 없이 진행돼온 근대화가 새로운 위험을 태동시켰다며 '성찰적 근대화'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지금껏 진행돼온 근대성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근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과학과 산업의 부정적 위험성을 감소시키고 성찰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우리 기업들이 새해에 한번 되새겨볼 만한 지적이다.

seokjang@fnnews.com

조석장 정치경제부장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