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 칼럼] 을미년, 새로운 길

김승중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1.04 17:26

수정 2015.01.04 21:59

[데스크 칼럼] 을미년, 새로운 길

#. 광복 70주년이자 분단 70주년을 맞은 을미년(乙未年) 첫 아침. 유난히 길었던 2014년 한 해 동안 일어났던 일들을 마음 밖으로 밀어내다 보니 맥이 빠져버렸다. 그런 찰나 윤동주 시인의 '새로운 길'이 가슴으로 파고들어왔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이 시가 우리 민족의 고난이 한층 깊어지기 시작한 1938년 쓰였다는 사실은 늘 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일본의 탄압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 시인은 특유의 아름답고 서정적인 시어로 외쳤다. "새로운 길이란 도전과 개척을 수반한 창조라고…."

잠시 눈을 밖으로 돌리니 일터와 배움터에서 잠시 놓여난 사람들이 저마다 행장을 꾸려 어디론가 가고 또 간다. 살림은 폭폭하고 시국은 어수선해도 떠나는 이들의 표정만은 밝고 환하다.

새해 아침에 떠오르는 붉은 태양을 바라보면서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해 떠나기 때문일까.

#. 우리 겨레에게 을미년은 참 힘든 해였다. 크고 작은 사건과 사고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몽골과 전쟁(1235년)을 치렀고, 1595년에는 임진왜란 중이었다. 일본 낭인들 손에 조선의 국모였던 명성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1895년)도 발생했다. 1955년에는 봄비가 그칠 날이 없어 보리농사를 망쳤다. 이때의 흉년이 워낙 심해 초근목피로 끼니를 때우는 게 다반사였다.

그래도 우리는 뭉쳐서 새로운 길을 만들고, 다듬고, 부수고 또 만들면서 2015년 을미년으로 돌아왔다. 그렇다. 새해에는 조상과 선배들이 그랬듯 다시 일어서야 한다.

을미년 새해 벽두에 한 줄기 빛이 스며들어왔다. 꽉 막혔던 남북대화 국면에 돌파구가 보여서다.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분단 70년을 마감하고 신뢰와 변화로 북한을 이끌어내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통일 기반을 구축하고 통일의 길을 열어 가겠다"고 밝히자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가 "최고위급 회담(을) 못할 이유(가) 없다"고 화답했다. 성급한 생각인지 몰라도 희망을 봤다. 광복과 분단 70주년사에 한 획을 긋는 대변혁이 올 수 있다는 것을.

#. 문제는 경제다. 2014년 한국 경제는 참 어렵고 힘들었다. 불확실한 기업경영 환경에 저성장 기조와 후발주자들의 추격 등 계속된 위기를 근근이 버텨냈다.

을미년도 만만치 않다. 경영환경을 낙관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오히려 생존을 걱정할 정도다. 재계 수장들의 을미년 신년사만 들여다봐도 알 수 있다. 위기, 혁신, 내실, 현장, 기필코, 집요하게, 절체절명 등으로 가득차 있다.

몇 해 전만 해도 안 그랬다. LG그룹 구본무 회장은 지난 2002년 신년사에서 1등이라는 말을 열세 번이나 썼다. 삼성 이건희 회장도 '글로벌 일류기업'을 내걸었다.

다시 새로운 (경제부흥)길을 만들자. 그것은 슈퍼달러.초엔저.저유가의 불확실한 환경과 선진국의 가격 역공, 신흥국의 기술 추격으로 유발된 '넛크래커' 위기 돌파에 있다. 남북관계 개선도 중요하지만 경제살리기가 더 급해서다.
여기엔 이름 없는 사람들의 기도가 모여서 만든 상서로운 기운이 필요하다.

sejkim@fnnews,com 김승중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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