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사설

[이구순의 느린걸음] '담달 법'이 된 방송법 개정안

이구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1.07 16:53

수정 2015.01.07 16:53

[이구순의 느린걸음] '담달 법'이 된 방송법 개정안

유료방송 시장의 경쟁 틀을 재정비하자는 방송법 개정안이 또 다음 달 국회로 넘어갔다. 국회가 2년째 방송법 개정을 미루면서 방송법 개정안은 흔한 말로 '담달 법'이 됐다. "다음 달" "다음 달" 하면서 시간만 끌고 있다는 말이다. 국회가 이 눈치 저 눈치 보는 것을 지켜보고 있자니 "국회가 국민의 시청권이나 유료방송산업 발전보다는 특정 기업의 매출 감소만 걱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얼토당토않은 의심까지 들 정도다.

방송법 개정안의 요지는 하나다. 방송시장 3분의 1을 넘는 거대 사업자를 규제하자는 거다.
규제 대상은 KT다. KT가 직접 인터넷TV(IPTV) 사업을 하면서 위성방송 자회사인 KT스카이라이프와 손잡고 여러 결합상품을 만들어 거대 사업자가 되고 있다. 얼핏 보면 KT에 대한 규제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 단계만 깊이 들여다보면 얘기가 다르다. 이미 유료방송 시장의 3분의 1 가까이 가입자를 확보한 KT는 위성방송 자회사와 함께 한 달 시청료 6000원짜리 방송상품을 판다. 위성방송은 가입자 수 규제를 받지 않기 때문에 위성방송을 통해 KT의 방송 가입자를 늘리려는 것이다. 경쟁사들도 생존을 위해 비슷한 가격으로 방송상품 값을 내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밑지고 파는 장사꾼은 없는 법이다. 유료방송 회사들은 싸구려 방송상품을 만드는 대신 콘텐츠 투자를 줄인다. 방송 콘텐츠를 무조건 싼값에 구매하는 것이다. 시장의 30% 가까운 KT의 위력에 밀려 콘텐츠회사들은 KT에 싸게 콘텐츠를 납품할 수밖에 없다. 수익이 적으니 방송 콘텐츠회사들은 새 콘텐츠 만들기는 꿈도 못 꾼다. 그저 지상파방송사에서 시청률이 높은 오락프로그램을 재방송하는 게 회사를 유지할 수 있는 길이다. 요즘 유료방송 채널은 100개가 넘지만 대부분 채널이 지상파방송의 재탕 삼탕인 이유다.

결국 방송 소비자는 참신한 콘텐츠도 없는 방송상품 선택조건으로 '싼값'을 선택한다. 유료방송사는 가입자를 더 모으기 위해 또 값을 깎고 콘텐츠는 더 열악해진다. 이게 국내 유료방송 시장의 악순환 고리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보자는 게 방송법 개정안이다. 유료방송사들이 싸구려 상품 경쟁이 아니라 제대로 만들어진 콘텐츠 경쟁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시장의 거대 사업자를 제한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법을 만들어야 할 국회가 2년째 숙제를 미루고 있다. 토론할 시간이 없다거나 특정 회사를 편든다는 말이 듣기 싫다는 게 국회가 숙제를 미루는 이유다. 그래서 국회가 KT의 방송시장 매출 감소를 걱정해 유료방송 시장의 악순환을 연장해주고 있는 것 아닌가 의심이 든다.


우리나라에 케이블TV, 위성방송, IPTV 같은 유료방송이 시작된 지 올해로 20년이다. 국회가 정작 걱정해야 할 것은 방송시장 특정 회사의 이해가 아니다.
국회가 진짜 걱정할 일은 20년째 하루 종일 100여개 채널에서 지상파방송사의 재탕 삼탕 프로그램만 봐야 하는 국내 유료방송 시청자의 현실이다. cafe9@fnnews.com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