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나루]

정직(正直)

지령 5000호 이벤트
얼마 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 있었다. 아니 해외에서도 웃음거리가 됐다.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이다. 뉴욕 공항에서 출발하는 항공기에서 그 항공사의 고위직인 일등석 승객이 서비스가 불만족스럽다고 비행기를 돌려 사무장을 내리게 하고 출발한 해프닝이었다. 그러나 사단은 그 이후에 일어났고 일파만파로 번져 온 나라가 시끄럽게 됐다. 고작 마카다미아라는 조그만 땅콩 한 봉지가 온 국민을 분노케 하고 해외에서도 땅콩사건이라며 국내 재벌들에 대한 비아냥까지 만들어졌다. 세계가 놀란 슈퍼 갑질의 대명사라 한다. 어이가 없다. 땅콩 한 봉지가 수십년간 쌓아온 기업의 신뢰도를 나락으로 떨어뜨렸고 우리의 국격마저 초라하게 만들어 버린 꼴이 됐다.

이런 갑질 논란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터져 나와 사람들의 공분을 사기 일쑤다. 갑질을 한 기업 중에는 폐업을 했다는 보도가 있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 이런 일이 생기니 정말 갑질은 없어질 수 없는가 보다. 지난해부터 국회에서도 각종 갑의 횡포를 막겠다고 여러 가지 제도개선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이 또한 지지부진하다. 사회에 어떤 형태로든 힘이라는 게 있는 한 갑과 을은 있을 수밖에 없고, 갑이 우월적 지위를 누리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일지 모른다. 이 자연스러운 현상을 법과 제도라는 인위적인 장치로 완벽하게 그 폐해를 막겠다는 것은 애당초 가당치 않은 일이다. 오히려 법과 제도는 보완적인 장치이고 사회적 합의와 문화적 성숙만이 근본적인 해법이 될 것이다. 사회갈등을 초래하는 갑질문화를 버리고 나보다 조금 못한 사람이 있어도, 조금 나하고 달라도, 마음에 들지 않아도, 조금 실수를 하더라도 이해하고 보듬는 그런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성숙함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는 이런 갑질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바로 정직하지 못함이다. 처음 사건이 불거졌을 때만 해도 승객인 그 항공사의 임원은 임원으로서 해야 할 바를 한 것이라며 사무장과 승무원의 잘못이라고, 그리고 폭행(?) 폭언도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조사가 진행되면서 이 모든 게 거짓이라 밝혀지고 더욱이 최초 e메일 삭제 지시, 목격자 회유(그것도 유치한 방법으로) 등을 시도하는 이중성을 보였다. 잘못이 드러나자 사과를 한다면서도 짜인 각본에 따라 무성의하게 사과를 하는 부정직함을 보였다. 사건을 뒤돌아볼 시간이 충분한데도, 여론이 그렇게 따갑게 지적을 해도 정직함을 보여주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필자는 당사자는 물론이고 우리 모두가 깊이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사회가 지금까지 정직하지 않았다는 방증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적당히 얼버무리더라도 시간만 지나면 해결될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이번 사건과 견주어 심히 우려되는 우리의 정직성과 관련된 설문 결과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몇 년 전 한국투명성기구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부자가 되는 것과 정직하게 사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를 묻는 질문에 성인의 31%, 청소년들의 40.1%가 '부자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부정 입학이나 부정한 취업 제안이 들어올 경우 받아들일 수 있나'라는 질문에 성인의 49%, 청소년의 54%가 '받아들이겠다'라고 대답했다. 정직성이 낙제점일 뿐만 아니라 성인보다 청소년의 정직성이 더 낮다는 것이 문제의 심각성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는 드러내놓고 부자의 갑질에 대해 손가락질을 하고 부정직함에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지만 정작 내 안에서는 그런 부자를 더 꿈꾸는 건 아닌지 되짚어 봐야 할 것이다.
이런 의식토양에서는 정작 우리가 바라고 원하는 건강한 사회 그리고 선진 국격은 요원할 것이다. 우리 모두가 정직했으면 이번 땅콩 회항과 같은 해프닝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한 사람을 여러 번 속일 수도 있고 여러 사람을 한 번 속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여러 사람을 여러 번 속일 수는 없다'는 링컨의 명언이 새삼 가슴에 와닿는다.

정의동 전 예탁결제원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