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 칼럼] 하르츠개혁에서 뭘 배울까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1.14 17:01

수정 2015.01.14 17:01

슈뢰더 총리, 총선서 패배.. 정권 내놓을 각오 서 있나

[곽인찬 칼럼] 하르츠개혁에서 뭘 배울까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는 독일식 제3의 길을 걸었다. 제3의 길의 원조는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다. 블레어는 노동당 소속이면서 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폈다. 슈뢰더는 사회민주당 소속이면서 보수 색채가 짙은 정책을 폈다. 지난 2003년 3월 슈뢰더 총리는 분데스타그(의회)에서 '어젠다 2010'을 제창했다. 7년 뒤 독일의 모습을 확 바꿔놓겠다는 포부였다.
여기서 나온 게 하르츠구상(Hartz Concept)이다.

'하르츠'란 이름은 폭스바겐 인사책임자인 페테르 하르츠에서 땄다. 슈뢰더는 연방총리가 되기 전 독일 북서쪽 니더작센주 총리를 지냈다. 니더작센주는 '공기업' 폭스바겐 주식 20%를 갖고 있다. 슈뢰더는 주 총리로 당연직 이사가 됐다. 자연스럽게 하르츠와는 잘 아는 사이다. 슈뢰더는 개혁의 중책을 하르츠에게 맡겼다.

당시 독일은 복지과잉으로 몸살을 앓았다. 직장을 그만둬도 실업수당으로 직전 임금의 60% 이상을 받았다. 이러니 누가 힘들게 일을 하겠는가. 실업률은 두자릿수를 웃돌았고 독일은 유럽의 병자라는 비아냥을 들었다. 하르츠는 여기에 메스를 댔다. '권리를 누리려면 의무를 다하라'는 원칙을 세웠다. 몸이 성한 장기실업자에겐 정부에서 일자리를 소개했다. 그래도 버티면 복지혜택을 줄였다. 'Ich AG', 즉 1인기업(Me Inc.)을 차리면 지원금을 듬뿍 줬다. 파트타이머 등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해고도 쉽게 했다. 복지개혁은 곧 노동개혁이 됐다. 폭스바겐에서 사람을 다루는 데 도가 튼 하르츠는 이 일에 적임자였다. 하르츠개혁은 Ⅰ편부터 Ⅳ편까지 연달아 나온다. 통상 하르츠개혁이라 하면 Ⅳ편을 말한다. 그러자 묘한 일이 벌어졌다. 보수 기독교민주당은 진보 사민당의 복지·노동개혁을 느긋하게 즐겼다. 재계는 대환영이었다. 종교계도 찬성에 한 표를 던졌다. 반면 슈뢰더 총리의 당내 인기는 급락했다. 노조도 분기탱천했다. 진보적 시민들은 플래카드를 들고 거리로 나섰다.

이후 슈뢰더 총리는 선거에서 줄줄이 졌다. 2004년 유럽연합(EU) 의회 선거에서 사민당 지지율은 21%에 그쳤다. 전후 최저다. 2005년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지방선거에선 기민당에 정권을 내줬다. 슈뢰더 총리는 당내 반란으로 당수직마저 내놔야 했다. 궁지에 몰린 슈뢰더는 임기를 1년 남겨놓고 2005년 조기총선을 실시한다. 결국 총리직은 기민당의 앙겔라 메르켈이 낚아챈다. 슈뢰더 7년 집권이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전후 독일 최대의 개혁으로 꼽히는 하르츠구상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실업률은 뚝 떨어졌다. 유럽의 병자는 유럽의 맹주로 거듭났다. 독일이 금융위기에서 비교적 쉽게 탈출한 데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도 있다. 그 점에서 영미식 개혁을 추구한 슈뢰더는 높은 점수를 받을 만하다. 그러나 소득격차가 커지고 사회적 갈등을 심화했다는 점은 반성할 대목이다. 나쁜 일자리만 양산했다는 비판도 있다. 독일에서 하르츠Ⅳ는 풍자적으로 저소득 실업자와 동의어로 쓰인다.

박근혜정부가 3년차 국정 화두로 구조개혁을 내걸었다. 슈뢰더처럼 정권을 걸지 않으면 이루기 힘든 과제다. 결정적으로 한국은 사회안전망이 빈약하다. 해고는 곧 살인이라는 말이 과장으로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한국 노조는 결사적이다. 쌍용차 해고자들의 굴뚝 투쟁, 오체투지 투쟁을 보라. 우리 노조에 비하면 독일 노조는 순둥이다. 최경환 부총리는 하르츠보다 훨씬 어려운 일을 떠맡았다. 독일은 두툼한 복지망을 조금 허물었을 뿐이다. 우리는 딱히 실직자들이 기댈 언덕조차 없다.

해법이 없진 않다. 새로운 일자리를 줄기차게 만들면 된다. 일자리는 의료·관광·교육 같은 서비스 분야에서 나온다. 노조와 맞짱을 뜨는 노동개혁은 에너지 소모가 크다.
성패도 불투명하다. 벌써 우군 안에서도 다른 목소리가 나온다.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는 "정부의 비정규직 대책은 비정규직 양산책"이라고 비판했다. 서비스산업 혁신을 노동개혁의 돌파구로 삼으면 어떨까.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