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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칼럼] 잔인한 '13월'

김성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1.28 17:15

수정 2015.01.28 17:15

"빅 브러더 국세청(IRS) 놈들아. 이번엔 다른 방법으로 접근해 주마. 내 살점도 떼어가라. 좋은 꿈 꿔라."

2010년 2월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파이퍼 체로키 경비행기를 몰아 7층짜리 국세청 건물을 들이받았다. 1명이 사망하고 10여명이 부상했던 이 사건은 9·11 테러를 연상시켜 미국 연방수사국(FBI)도 관심을 가졌다. 다행히 가해자가 인터넷에 쓴 유서가 발견되면서 개인적 원한(?)에 의한 사건 정도로 결론났다. 유서에 따르면 당시 신생 벤처기업(스타트업)을 두 번이나 창업했으나 법인이 세금 문제로 연속 문을 닫게 되면서 원한이 증폭됐던 것으로 보인다. 이쯤 되면 혹시 징수 방식에 문제가 없었나 싶겠지만 미국 국세청은 이 사건으로 미국 전역에 있는 국세청의 경비를 늘리는 등 보안을 강화하는 데 거금 3800만달러를 지출하는 것으로 마무리지었다.

미국 국민 사이에서도 과세당국에 대한 반감은 적지 않은 모양이다.
선진국이든 후진국이든 세금 많이 걷는 것을 좋아하는 국민은 없단 얘기다.

올해 연말정산 시기에 불거진 세금폭탄 논란은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정부가 국민에게 던진 메시지와 실제 연말정산 예상치가 너무 차이가 났다. 정부가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 방식으로 정산방식을 변경했지만 결과적으로 국민에게 각인된 메시지는 딱 한 가지였다. "소득 많은 사람에게 많이 떼고, 적게 버는 사람은 변동이 없거나 더 돌려준다"는 메시지였다.

연말정산이 다가온 후 언론이 다양한 케이스별 분석 결과를 쏟아내자 정부가 전달하려 했던 이 메시지가 명쾌하게 들어맞지 않았다. 논란이 증폭되자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했지만 결과적으로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잠재우기에는 설명이 역부족이었다.

두 번째 문제는 정책의 일관성 부족이다. 바뀐 정산 방식은 여러 계층에 당혹감을 안겼다. 대표적 케이스가 다둥이가정과 절세 금융상품 가입자들이다. 자녀 양육비 공제가 대폭 줄었고, 연금저축 공제 방식도 최대 40%에서 일률적 12% 공제로 바뀌면서 절세 상품으로서의 매력이 급감했다. 그래서인지 연금저축 신규 가입건수는 정부의 세제개편 방식 발표 후 대폭 줄었다.

연말정산 시 특정 상품이나 사례에 혜택을 주는 시스템은 정부의 정책을 국민에게 각인시키는 효과가 있다. 박근혜정부 역시 이전 정부와 마찬가지로 출산을 장려하고 국민의 자발적 노후 대비를 유도하고 있다. 사실이라면 올해 연말정산은 정부의 정책적 일관성이 부족하다고도 볼 만한 것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통을 강조하던 현 정부에 이번 연말정산 논란은 큰 과제를 남기게 됐다.
국민이 납득할 만한 징수방식이 아니라면 '세금 폭탄'이라는 날 선 비난은 세제개편안을 디자인한 기획재정부와 정치권에서 잘 새겨들어야 한다.

이제 연말정산 시즌은 '보너스 받는 13월'이 아니라 '잔인한 13월'로 불리게 됐다.
내년 연말정산에 어떤 수식어가 붙게 될지는 정부의 의지에 달려 있다.

ksh@fnnews.com 김성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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