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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일만 야구선임기자의 핀치히터] 은밀한 유혹 치명적 상처

파이낸셜뉴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1.28 17:16

수정 2015.01.28 17:16

본즈·로드리게스 등 특급 메이저리그 선수들 금지약물 복용으로 추락
본즈·로드리게스 등 특급 메이저리그 선수들 금지약물 복용으로 추락

[성일만 야구선임기자의 핀치히터] 은밀한 유혹 치명적 상처


에릭 가니에는 평범한 투수였다. 2001년 전반기 마이너리그서 3승 무패 평균자책점 1.52를 기록했다. LA 다저스는 후반기에 그를 메이저리그로 승격시켰다. 마이너리그와 메이저리그의 간격은 하늘과 땅이다.

가니에는 메이저리그서 6승7패 평균자책점 4.75를 남겼다. 두드러진 활약은 아니었다.
이듬해 스프링캠프에 나타난 가니에는 확 달라졌다. 188㎝, 95㎏의 ML 선수 평균 몸매가 115㎏의 뚱보로 변했다.

달라진 것은 또 있었다. 시속 140㎞ 후반의 직구 스피드가 160㎞로 빨라졌다. 도시철도에서 KTX급으로의 진화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다저스 짐 트레이시 감독은 그에게 마무리를 맡겼다. 2002년 성적은 52세이브, 평균자책점 1.97. 평범한 투수의 비범한 변신이었다.

가니에는 2003년 55세이브 평균자책점 1.20을 기록했다. 블론 세이브가 단 한 차례도 없는 완벽 투구였다. 투수 최고의 영예인 사이영상이 주어졌다. 마무리 투수가 사이영상을 받은 것은 1992년 데니스 에커슬리 이후 처음 있는 일. 이후론 현재까지 아무도 없다. 가니에는 2004년 45세이브를 올렸다. 시즌 45세이브를 세 차례 이상 기록한 투수는 역대로 4명뿐이다.

믿기 어려운 수직상승은 불가사의한 급전직하로 이어졌다. 이후 4년간 고작 35세이브에 그쳤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가니에는 경기력 향상을 위해 금지 약물을 복용했다고 실토했다. 스테로이드를 복용하면 살이 찐다. 더불어 근육에 놀라운 힘이 생긴다. 투수의 경우 5~10㎞ 가량 스피드가 빨라진다.

배리 본즈는 역대 최고의 메이저리그 선수다. 하지만 그는 명예의 전당 투표서 한 번도 40%를 넘기지 못했다. 이 타격의 천재는 타격 코치조차 하지 못한다. 명성만큼이나 불명예스럽다.

본즈는 1999년 34개의 홈런을 때려냈다. 35세의 나이를 감안하면 대단한 파워였다. 더구나 샌프란시스코 구장은 좌타자에게 불리한 구조다. 본즈는 2000년 49개, 다음해엔 73개(ML 신기록)의 아치를 그려낸다. 71호, 72호 홈런은 박찬호(당시 LA 다저스)에게 뽑아냈다. 금지 약물을 복용한 탓이다.

금지 약물에 마음을 빼앗기는 이유는 즉시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가니에는 평범한 투수에서 특급으로 탈바꿈했다. 본즈는 37세라는 늦은 나이에 도리어 홈런 신기록을 세웠다.

은밀한 유혹은 전성기 선수들에게도 손을 뻗힌다. 알렉스 로드리게스는 1998년부터 3년 연속 40 홈런(42-42-41)을 때렸다. 강정호(넥센-피츠버그)급 파워 유격수였다. 홈런수는 2001년 52개, 2002년엔 57개로 해마다 껑충 뛰었다. 금지 약물 복용 의심을 받았다.

금지 약물은 약효만큼이나 치명적 위험을 안고 있다. 가니에는 약물 후유증으로 일찍 은퇴해야 했고 본즈와 로드리게스는 숱한 거짓말로 조롱의 대상이 됐다. 사이클 스타 랜스 암스트롱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한국 수영의 간판 박태환(26·인천시청)이 금지 약물인 '테스토스테론' 성분을 주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박태환은 "금지 약물인지 몰랐다. 병원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을 거쳤다"고 설명했다. 박태환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국제수영연맹(FINA)의 징계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2년간 경기에 출전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럴 경우 박태환은 내년 8월 리우 올림픽에 출전할 수 없다. 사실상 선수 생명이 끝난다. 박태환은 수영에서 유일하게 메달권에 접근해 있는 선수다.
병원 측의 사소한 실수(그렇게 믿고 싶다)로 놓치기엔 너무 아까운 메달이다. 라이벌 쑨양(중국)은 똑같은 잘못을 범하고도 발 빠른 대응으로 3개월 정지에 그쳤다.
대한수영연맹(회장 이기흥)의 할 일이 많다.

texan509@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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