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美 중산층과 대통령

요즘 미국 중산층은 신이 났다. 유가하락 때문이다.

운전하는 사람이라면 너무나 잘 알겠지만 휘발유 가격처럼 우리의 지갑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상품도 드물다.

28일 현재 국제유가는 6년 만에 최저를 기록하고 있다.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3월 인도분 선물가격은 배럴당 44.5달러로 2009년 3월 이후 가장 낮다.

지난여름까지만 해도 자동차에 한 번 휘발유를 넣는 데 50달러를 지출했던 소비자는 이제 30달러만 넣어도 연료를 가득 채울 수 있어 매우 만족해하고 있다. 예전에 한 달에 400달러를 썼던 것이 250달러로 줄었다.

소비자는 유가 폭락에 대해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감사해야 한다. 유가가 내린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의 셰일석유 개발을 견제하기 위한 OPEC의 장기전략 때문이다.

기본 논리는 이렇다. 미국의 방대한 셰일석유 보유량은 앞으로 에너지 업계와 유가 시장을 완전히 바꿔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OPEC, 러시아 등이 주도하는 세계 석유시장에서 미국의 입김이 강화된다는 의미다.

문제는 셰일석유 채굴에 현재 기술로는 엄청난 비용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셰일석유 채굴에 필요한 막대한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투자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원유 가격이 바닥을 치고 있는데 누가 투자를 하겠는가.

투자자가 없으면 셰일석유 개발업계는 침체에 빠질 수밖에 없다.

바로 이 논리를 이용해 OPEC은 석유 생산량을 줄이지 않고 있다. 누가 오래 버티나 보자는 '치킨게임'이다.

석유 생산량이 수요를 초과하다보니 가격은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이 줄어들다보니 미국 소비자신뢰지수는 1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시간대에 따르면 미국의 1월 소비자신뢰지수 예비치는 98.2로, 2004년 1월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소비자신뢰지수는 소비자가 6개월 후 경기, 수입, 지출 등을 어떻게 전망하고 있는지에 대한 수치다. 지수가 높으면 소비자의 경기 전망이 낙관적이라는 의미다.

미국 소비자의 신뢰지수가 이처럼 높아진 것은 국제유가 약세로 소비자의 지갑이 점차 열릴 것으로 전망하는 시각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최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새해 국정연설도 중산층에게는 희소식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중산층을 살리기 위해 부유층이 약간 희생해야 한다며 연소득 50만달러(약 5억4600만원)가 넘는 고소득층의 세율을 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월스트리트의 '살찐 고양이'로 통하는 대형 은행들을 비롯, 자산이 500억달러를 초과하는 100대 금융기관으로부터 은행세를 거둬들이는 방안도 제시했다.

여론은 변덕스럽기 짝이 없다고 했던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바닥을 기던 오바마 대통령 지지율은 휘발유 값이 떨어지고 부자에 대한 증세방안이 언급되면서 하루아침에 반등했다.

최근 워싱턴포스트와 ABC뉴스가 공동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오바마 대통령 지지율은 2013년 5월 이후 1년8개월 만에 50% 선을 회복했다.

중산층으로부터 호응을 얻는 데 실패한 오바마 행정부의 건강보험 개혁안인 '오바마케어'는 약간 여유가 생긴 국민의 주머니 속으로 파묻혀 버렸다.


사상이나 통솔력보다는 내 밥상 위에 반찬 한 가지를 더 줄 수 있는 대통령이 진정한 리더로 인식되고 있다.

요즘 시대에 대통령이라는 직업은 'CEO'와 마찬가지가 돼 버렸다. 아니, 예전부터 그래왔는지도 모르겠다.

jjung72@fnnews.com 정지원 뉴욕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