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대통령·청와대

MB측, 미묘한 시기에 개헌 예고발언 왜?

정인홍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1.30 18:04

수정 2015.01.30 18:04

남북정상회담 추진을 비롯해 세종시 수정안 등 주요 국가현안에 대한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내용에 대해 청와대가 30일 조목조목 반박에 나서면서 전·현정권간 충돌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특히 이 전 대통령측이 휘발성이 높아 금기시되다시피한 '개헌 문제'와 '선구구제 개편' 관련 입장을 별도로 밝힐 예정이어서 청와대와 여야 정치권이 그 배경 등을 놓고 예의주시하는 모양새다.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살리기를 최우선 국정과제로 삼고 '개헌'을 '블랙홀'로 규정한 만큼 향후 개헌론을 놓고 전·현직 대통령이 정면 충돌할 경우 정국 긴장도가 높아지는 한편 경기회복을 위한 골든타임 실기 논란으로 비화될 가능성마저 있다.

우선 청와대로선 비록 전직 대통령의 회고록이지만 주요 국가 중대사를 놓고 자칫 불필요한 정치적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우려속에 적극적인 반박을 통해 사실관계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신구정권 정면 충돌하나…靑 유감 표명

보수정권이라는 동질감에도 불구, 주요 국가 현안을 놓고 신구권력이 갈등을 빚는 것 자체가 큰 파장이 예상되며, 국회의 자원외교 국정조사 등을 앞두고 여권내 잠복해있던 친박근혜계 대(對) 친이명박계간 계파 갈등이 재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청와대는 우선 이 전 대통령이 지난 2009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정운찬 전 국무총리가 대선주자로 부상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 세종시 수정안을 반대했다고 주장한 데 대해 단호한 어조로 "유감"을 표시했다.


한 고위 관계자는 예고없이 기자실을 찾아 세종시 추진이 2007년 대선공약이었고, 당시 이명박 대통령 후보도 세종시 공약 이행을 약속하면서 박 대통령의 유세 지원을 요청했다고 반박했다.

그는 이 전 대통령의 '정운찬 대망론' 견제 주장에 대해 "사실에 근거했다기보다는 오해에서 한 것이며 그 부분에 대해선 유감"이라며 "세종시 문제가 정치공학적으로 이렇게 저렇게 해석되는 것은 과연 우리나라나 당의 단합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정 총리 견제론의 경우 근거없이 나온 정치공학적 발언이며 국가통합나 여당내 단합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트레이드마크인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 이미지가 대선을 겨냥한 정략적 수단으로 폄훼되는 것에 대한 노골적 반감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또한 회고록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남북간 비밀접촉의 내용이 상세하게 언급되는 등 남북관계를 거론한 것과 관련해선 "남북문제, 남북대화를 비롯해 외교문제가 민감한데 세세하게 나오는 것이 외교적으로 국익에 도움이 되느냐는 지적이 언론에서 많이 있고, 저도 우려된다"라고 했다.

광복 및 분단 70주년을 맞아 통일대박론과 한반도신뢰프로세스 기조를 토대로 평화통일을 위한 전기를 마련하겠다는 구상을 추진하면서 남북간 대화모드 재개를 위해 부단하게 노력하는 와중에 북한의 반감을 살 수 있는 '민감한' 내용이 노출된 데 대해 불편한 기색을 드러낸 것.

그러면서 "(남북간 비밀접촉 움직임은) 제가 알기로는 없는 것으로 안다"며 "현 정부에서는 외교정책은 투명하게 한다는게 기본 방침이다. 방금 얘기한 그런 막후, 이런 불필요한 오해는 안 하는게 좋겠다"며 전 정권과의 정책적 차별성을 부각시켰다.

최근 박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이 심리적 마지노선인 30%대로 떨어지면서 회고록 논란의 확산을 미리 차단하지 않을 경우 국정동력 회복에 악재가 될 수 있다는 판단아래 적극적으로 '방어선'을 펼쳤다는 시각도 있다.

■'휘발성' 큰 개헌 입장 피력시 정국경색 우려

특히 이 전 대통령측이 이날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선거구제 개편이나 헌법개정에 대한 의사를 표현할 기회가 있을 것임을 예고, 파장이 예상된다. 개헌론은 박 대통령이 경제살리기에 매진하는 골든타임을 허비하게 하는 '블랙홀'로 규정하고 경제혁신 3개년계획의 차질없는 이행을 통한 경기회복에 국정 동력을 집중해온 만큼 개헌 공론화시 전·현직 대통령이 정면 충돌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전 대통령측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이날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선거구역 개편이라든지 개헌이라든지 이런 문제를 제기했지만 이루지 못했다"며 이 전 대통령이 선거구제 개편과 개헌 등 정치권의 민감한 이슈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조만간 직접적으로 밝힐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여권 일각에선 청와대 문건 유출 파문 등 각종 파동으로 박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떨어지는 데다 금융위기의 지속 등 대내외적 환경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남북관계의 비사도 모자라 파급력이 높은 개헌 문제 등까지 공론화를 시도할 경우 정국이 대혼란으로 치달을 수 있다며 경계하고 있다.

특히 개헌의 경우 박근혜 대통령이 강한 거부감을 보인다는 점에서 자칫 이 전 대통령이 현실 정치에 개입하기 위한 수순이나 전·현직 대통령의 의견 충돌로 비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김 전 수석은 "이 전 대통령은 현실 정치에 개입하는 것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다"며 "그건 전임 대통령으로서 맞지도 않고, 적절한 행동이 아니라는 생각도 갖고 있다"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이 전 대통령의 의사 표현 방식에 대해서도 "추가 회고록이 될지, 직접 말씀을 할지 확정된 게 없다"고 덧붙였다.

청와대와 여권으로선 대내외적 상황이 좋지 않은 가운데 회고록 발간이나 개헌론 언급 예고 움직임 등을 볼 때 무언가 정치적 의도가 깔려있다는 의구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이 만일 어떤 형태로든 개헌을 언급하게 되면 신구 정권의 갈등은 정점으로 치닫고 여권내 친이-친박간 갈등도 고조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이 전 대통령이 재임 중 이뤄졌던 박 대통령과의 몇 차례 단독회동이나 비사를 언급한다면 정국 경색이 심화될 수도 있다.


여권이 자원외교 국정조사를 수용한 것은 물론 4대강 사업에 대해서도 비판적 기조를 이어가는 등 전임 정부와 차별화를 시도하면 할수록 이 전 대통령의 행보도 그만큼 적극적이고, 공격적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일각에선 4대강 사업이나 자원외교 등 전 정권의 대표적 국정과제에 대한 공세수위가 높아지면서 '본능적인' 자기방어적 성격의 행보라는 시각도 있다.
이 전 대통령 측은 정치적 의도는 없으며 전직 대통령으로서 국정 경험을 공유하는 차원일 뿐이라고 선을 긋고 있다. haeneni@fnnews.com 정인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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