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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양치기 소년

박경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2.05 17:18

수정 2015.02.05 17:18

[여의나루] 양치기 소년

어렸을 적 누구나 한번쯤 접해본 이솝우화 중엔 양치기 소년이란 이야기가 있다. 거짓말을 일삼다 정작 중요한 때에 누구도 소년의 말을 믿지 않게 돼 늑대에게 양을 모두 잃고 만다는 내용이다. 평소 거짓을 일삼으면 정작 필요한 때 사람들의 신뢰를 잃어버리게 된다는 교훈이다. 필자가 이 우화를 꺼낸 이유가 바로 요즘 정부정책을 바라보는 우리 국민의 시선이 마치 양치기 소년을 바라보는 듯해서다.

지난해 국내 10대 거짓말 중 하나가 담뱃값을 인상한 것은 증세 목적이 아니고 국민 건강을 위한 것이라는 정부의 설명이라는 비아냥이 있었다(우스갯소리지만 친구 중 한 명은 너무 오래 살까 걱정이 돼서 담배를 피운다니 영 틀린 말은 아닌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올초엔 연말정산세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바뀐 연말정산제도로 국민 여론이 나빠지자 당초 증세가 아니라는 주장을 뒤엎고 군색하게 소급해서라도 더 받았던 세금을 돌려주겠다고 세법을 누더기로 만들면서 일단락됐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여론의 질타가 이어진 정책발표가 있었다. 주민세와 영업용 자동차세의 증세를 위해 십자가를 지겠다던 관계부처 장관의 발표는 허언이 돼버렸고 고소득 직장가입자의 보험료를 늘리는 방향의 건강보험료 개편 계획은 공식 발표 하루 전에 사실상 백지화 논란에 휩싸이고 말았다. 최근 이러한 정책혼선을 바라보다보면 하루하루 국민의 신뢰를 잃어가는 정부나 여당이 이솝우화 속 양치기 소년과 뭐가 다를 바가 있는지 모르겠다. 일관성도 소신도 없는 정부, 표만 의식하고 정부 탓만 하는 여당 그리고 컨트롤타워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청와대 사이에서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땅에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때마침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발표한 지난해 국가경쟁력 평가는 우리의 가슴을 더욱 쓰리게 한다. 국가경쟁력 평가는 2007년 11위에 랭크된 이후 지속적으로 떨어져 전체 144개국 중 26위를 차지해 거시경제부문 순위 7위, 시장규모부문 순위 11위가 무색해진다. 그보다 더 기가 막히는 것은 정책투명성 부문으로 133위로 최하위권이고 법체계의 효율성 부문도 113위인 것이다. 작금의 정부정책이 오락가락하고 왜 민심이 정부에 등을 돌리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국가를 근본부터 혁신하겠다던 정부의 각오가 제대로 실행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정부는 부랴부랴 청와대에 정책조정수석을 신설하고 정책조정협의회를 구성해 정책 입안에서 시행까지 관계부처 간 협의를 꼼꼼하게 해나가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여론은 그다지 곱지 않아 보인다. 지금까지의 정책혼선이 조정기능이 없어서 일어난 게 아니라 의견 수렴과정도, 납득할 만한 설명도 없이 불쑥불쑥 정책을 쏟아내는 것 때문에 국민은 분노하고 반발하는 것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미 이런 조정기능을 하는 회의체 등이 6개나 있다는 것 아닌가. 사실 문제가 된 정책 하나 하나를 따져보면 나름대로 합리성이 있다. 담뱃값이 대폭 인상됐지만 여타 나라에 비해 그리 높지도 않으며 새로 도입된 세액공제제도가 소득재분배기능에 더 효과적이며 건보료 개정안도 별로 나무랄 데가 없는 것이다. 정책수립 초기단계부터 진솔하게 그 필요성을 설명하고 국민의 의견도 수렴하면서 국민적 합의를 구하는 과정을 거쳤더라면 큰 마찰 없이 시행됐을 정책들이다. 국민과 정부 사이에 신뢰와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2차대전 당시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이 한 "국민 여러분께 바라는 것은 피와 땀과 눈물뿐"이라는 호소가 생각난다. 영국 국민 모두 어려운 현실을 직시하고 흔쾌히 희생할 각오를 한다.
어느 국민이 나라를 사랑하지 않으며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겠는가. 지도자가 진정성을 갖고 다가서면 우리 국민 모두 자기를 희생할 준비가 돼 있는 애국자들이라 필자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정의동 전 예탁결제원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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