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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 공직사회 바로 세우기

김태경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2.06 16:34

수정 2015.02.06 16:34

[여의도에서] 공직사회 바로 세우기

최근 사석에서 만난 정부 고위인사는 지난해 발생한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두 가지 반성을 얘기했다. 하나는 공무원이 공무원답지 못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전문성이 없었다는 것이다. 공무원답지 못했다는 것은 정치중립과 고도의 윤리성을 동반해야 하는 공무원들이 직업공무원이 돼버림으로써 책임 회피에 급급했다는 뜻이고, 전문성 결여는 사건 발생 이후 아무런 대처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치와 행정은 둘 다 가능성의 예술이다. 도덕적 진지함과 뜻과 행동의 일관성, 즉 정치적 책임의 윤리성이 동반돼야 함은 물론이다. 이런 공직에서의 진지함이 사라진 것이 대형 참사를 촉발시켰고 가능성을 타락의 예술로 이끌었다.


영국의 역사가 토니주트는 공직에서의 도덕적 진지함은 포르노그래피와 같다고 했다.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보는 순간 그것이 무엇인지를 확연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공직가치는 사문화된 지 오래다. 지난 1980년 말 제정된 공무원윤리헌장은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 않는 화석화된 문서로만 존재할 뿐이다. 이후에 제정된 공무원윤리강령은 공무원들로 하여금 해서는 안될 부정적 사항들만 잔뜩 규정해 오히려 공무원들의 순응성과 종속성을 심화시켰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시대가 변화된 만큼 변한 내용을 담보하지 못하는 윤리강령은 공직사회의 경직성을 초래하고 사회 변화 추세에 역행할 우려가 있다. 공직가치는 시장화가 모든 사회적 부문을 잠식하는 과정에서 공공성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다. 그런데 이런 가치가 사장될 때 해당 사회의 비전은 불투명해질 수밖에 없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오는 4월이면 세월호 참사 1주년을 맞는다. 그럼에도 세월호 이후 무엇이 달라졌는지 체감하기란 쉽지 않다. 세월호 참사는 찰나적으로 우리에게 이 사회에 진리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준 사건이다. 빛처럼 순간적으로 반짝였다가 소멸하는 게 진리의 속성이라면 우리가 할 일은 이를 놓치지 않는 것이다.

공직가치를 다시 묻는 것도 그래서다. 세월호 참사는 다른 중요한 정치 사회적 가치와 함께 공직가치를 새삼 되묻게 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정부는 이런 반성을 토대로 공직가치를 바로 세우는 작업에 착수할 것으로 알려졌다. 공직가치를 장기 과제로 선정해 근본부터 다시 손을 대겠다는 것이다. 공직가치를 바로 세워 공무원다운 공무원을 만들겠다는 정부의 방침이 때늦은 감은 있지만 방향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공직가치를 바로 세우는 작업은 자칫 밑 빠진 독에 물붓기식의 보여주기 행정의 전형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그 취지와 배경을 십분 수용하더라도 공직가치의 정립이 해답은 아니다.

시급한 과제는 따로 있다. 행정고시를 통해 5급공무원으로 채용된 공무원들은 임용된 후 곧바로 1년 동안 공직가치를 비롯한 다양한 교육을 충분히 받은 후 현업에 복귀하지만 7·9급 공무원들은 통상적으로 임용된 후 현업에 바로 투입된다. 공무원 자질 습득 등에 필요한 교육은 언감생심이다. 현행 공무원교육체계를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하는 이유다.

공무원들의 절대 다수를 이루는 7·9급 공무원들의 교육은 대충하면서 한 해 200명 남짓 선발하는 5급 공무원들에게 교육의 혜택을 집중적으로 주어지게 하는 것은 계급차별이다.
공무원 조직문화와 계급구조에 대한 전면적 쇄신작업 없이 뜬금없는 공직가치 재정립은 사실 말장난에 불과하다. 공무원교육체계는 10년 전이나 20년 전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다.
공직가치는 제대로 된 교육여건 개선과 계급차별 없이 모든 공무원들에게 충분한 교육과 공정한 인사가 이뤄질 때 달성될 수 있다.

ktitk@fnnews.com 김태경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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