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칼럼] CCTV가 필요없는 사회로

김승중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2.08 17:12

수정 2015.02.08 17:12

[데스크칼럼] CCTV가 필요없는 사회로

#. 자고 일어나면 사고다. 네살배기 유치원생이 김치를 남겼다며 아이가 날아가 떨어질 정도로 뺨을 후려친 인천 송도 어린이집 보육교사 폭행, 의정부시 대봉그린아파트 화재, 악마를 떠올리게 한 안산 인질범 김상훈….

심지어 사소한 주차 시비가 야구방망이 폭행으로 번지고, 여차 친구가 이별을 통보하자 차로 들이받고, 마트 계약금 문제가 분신으로 이어지면서 대형화재가 발생했다. 세월호 등 각종 사고에 물들어 혼돈 그 자체였던 지난해의 악몽을 다시 떠오르게 한다.

왜 한국 사회는 대형 사건사고로 바람 잘 날이 없을까. 전문가들 의견은 다양하다. 한국 사회가 처한 구조적 문제의 표출이기도 하고, 기본과 원칙을 무시한 우리 사회의 집단적 태만과 타인에 대한 배려 부족이 만들어낸 인재라고도 꼬집는다. 분노나 화를 억누르지 못하는 '충동조절장애'를 앓는 사람이 늘어났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실제 지난해 검거된 폭력범 열 명 중 네 명이 홧김에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만든 SF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톰 크루즈는 최첨단 범죄예방 시스템에 의해 '미래의 살인자'로 지목된다. 크루즈는 경찰의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써보지만 수포로 돌아간다. 신호등, 상가, 지하철 등 곳곳의 폐쇄회로TV(CCTV)가 눈의 홍채로 그를 인식하고 경찰에 실시간으로 통보하기 때문이다. 조지 오웰이 소설 '1984년'에서 경고한 '빅 브러더(큰형·보이지 않는 손)'가 영화 속에서 현실화한 것이다.

CCTV는 우리 생활의 일부분이 됐다. 아니 잠에서 깨어나 잠자리에 들 때까지 CCTV의 감시 속에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CCTV의 포로가 돼버린 셈이다. 그럼 현대인은 하루에 몇 번이나 CCTV에 찍힐까. 5년 전 국가인권위원회 조사 결과 수도권 시민은 평균 83차례 CCTV에 포착된다고 한다. 지금 CCTV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서 하루 100차례 넘게 CCTV 그물망에 걸린다고 한다.

#. CCTV는 계륵(鷄肋)과도 같은 존재다. 순기능과 역기능을 함께 갖고 있어서다. 범죄자를 잡는 과정에서 CCTV가 경찰의 '눈'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 으뜸 순기능이다. 인천 어린이집 보육교사 폭행 장면이 CCTV로 드러났고, 최근 '크림빵 뺑소니 사건'의 해결 과정에서도 현장 인근 건물의 CCTV 화면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역기능은 모든 사람을 예비범죄자로 보고 정보를 수집하는 인권침해다. CCTV로 인해 개인정보 자기결정권(自己決定權), 초상권, 사생활의 비밀이 보장되지 않는다. CCTV가 존재하는 한 이 문제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CCTV가 설치된 지역의 범죄율은 낮아졌더라도 범죄가 이웃 다른 지역으로 옮아가 전체 사회의 범죄율에는 별 변화가 없는 일명 '풍선효과'도 문제다.

요즘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경쟁이라도 하듯 CCTV 설치를 약속한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시스템이 모든 범죄를 막아줄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유리알 감시'가 만능이 될 수 없다는 얘기다. 대형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원인 파악과 대책 수립은 뒷전으로 밀어놓은 채 안전사회의 욕구 앞에 항복만 하고 있다.
이는 재난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 국가의 기본책무라는 것을 잊고 있어서다. 지금부터라도 CCTV가 없어도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데 힘을 모으자.

sejkim@fnnews.com 김승중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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