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자동차 천국' 미국에서의 한국車

미국은 그야말로 자동차 천국이다. 차가 없으면 옴짝달싹 못한다. 그나마 뉴욕 등 동부지역은 대중교통이 발달해 있지만 한인이 많이 거주하는 로스앤젤레스를 포함한 서부지역은 하다 못해 장을 보러 갈 때도 차가 없으면 힘들다. 지하철은 인구 밀집지역 일부에만 있고 버스는 큰 도로 외엔 잘 다니지 않아서다.

그래서인지 자동차 판매도 활기를 띤다. 시장조사업체인 IHS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세계 신차 판매 예상대수 8860만대 가운데 미국 몫은 약 1690만대다. 20%가량이다. 미국시장을 잡으면 세계시장 제패도 넘볼 수 있다.

당연히 글로벌 자동차업체들의 경쟁도 치열하다. 미국 도로 위에는 세계 자동차 메이커들이 생산하는 브랜드가 다 있다.

그렇다면 미국시장에서 한국차의 위상은 어느 정도일까. "여러분 가운데 루지(활강용 썰매)를 본 사람이 있습니까. 루지는 길이 1미터 정도의 소형 교통수단인데 공간은 거의 없고 출발하려면 밀어야만 언덕을 내려갈 수 있죠. 미국에서는 그것을 '현대'라고 부릅니다."

1988년 11월 쏘나타가 미국에 진출했을 당시 NBC TV의 대표 간판 토크쇼 프로그램인 '투나잇쇼' 진행자 겸 자동차 마니아로 유명했던 제이 레노는 현대차를 이렇게 악평한 적이 있다.

모국을 떠나면 애국자가 된다는 것을 알았던지 당시만 해도 한국차는 애국심 마케팅에 기대는 편이 많았다. 말 그대로 현지 동포나 해외 파견직원 위주로 타고 다닌 차가 한국산 차였다.

하지만 꾸준한 제품개선 및 마케팅을 통해 한국차의 위상은 격상됐다. 실제 미국 고속도로에 나가보면 한국인이 아닌 백인이나 흑인, 히스패닉 등 다양한 미국인이 한국차를 운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수치로도 방증된다. 지난해엔 미국시장에서 현대차가 72만5718대, 기아차가 58만234대를 판매해 사상 최고 기록을 세웠다.

또 자동차 전문매체인 카MD가 최근 발표한 2014년 자동차업체 및 차량 신뢰도 종합평가 발표에서 현대차가 일본산인 도요타·닛산, 독일차, 미국차 등을 밀어내고 2위를 차지했고 기아차도 7위에 올랐다. 모터트렌드가 선정한 2015년 최고의 밴엔 혼다 오디세이, 도요타 시에나 등을 누르고 기아 세도나(한국명 카니발)가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이쯤이면 한국차도 미국에서 잘나간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직접 만나본 미국인들도 "생각보다 한국차가 좋았다"는 얘기를 하곤 한다. 그러나 아직도 넘어야 할 벽은 높다. 오토데이터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자동차는 1652만2000대가 팔렸고, 293만5008대를 판매한 제너럴모터스(GM)가 시장점유율 17.8%로 1위에 올랐다. 2위는 포드로 247만1315대(점유율 15.0%), 3위는 도요타(237만3771대, 점유율 14.4%)였다. 점유율로 봤을 때 현대차는 4.4%, 기아차는 3.5%로 아직까지 '마이너'다.

미국 소비자는 브랜드 충성도가 높은 편이다. 신제품이나 새 브랜드에 대해 한국처럼 민감하지 않고 단기간에 '대박 상품'이 나올 확률도 적다. 이 때문에 시장 진입장벽이 높다. 반면 한 번 신뢰를 얻은 제품이나 브랜드는 간혹 실망스러운 일이 생겨도 잘 바꾸지 않는다. 실제로 GM이나 포드, 도요타 등 지난해 미국 판매 '톱3' 회사들은 모두 대량리콜 사태를 겪었는데도 판매가 줄지는 않았다.

미국차들은 전통적으로 미국인이 좋아하는 픽업트럭이나 중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으로 승부한다. 일본차들은 가격 대비 무난한 성능과 연비를 내세운다.
유럽 업체들 역시 브랜드별 장점과 스토리를 만들어 판다. 최근 기아차가 미국 슈퍼볼에 6년 연속 광고를 하는 등 마케팅에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미국에서 '한국차' 하면 떠오르는 브랜드 이미지가 아직까지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 2015년엔 한국차가 충성도 높은 미국 고객을 더 많이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jhj@fnnews.com 진희정 로스앤젤레스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