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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갑질' 금지 가처분

박경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3.02 17:07

수정 2015.03.02 17:07

[fn논단] '갑질' 금지 가처분

2013년 기내 라면상무 사건, 유제품 회사 영업사원이 대리점 주인을 협박하고 제품을 강매한 사건, 최근 땅콩회항 사건 등이 연이어 터지면서 이른바 '갑질'이라는 용어가 일상화된 듯하다. 이러한 갑질이라는 말은 권력의 우위에 있는 갑이 권리관계에서 약자인 을에게 하는 부당행위를 통칭하는 개념 정도로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사건들이 이슈화되고 확산된 데는 인터넷포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인터넷신문의 역할이 지대하다. 몇몇 종이 신문에 의한 기사화를 막는 것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제 을에게 있어 갑질에 대한 가장 빠르고 직접적인 해결방법은 영향력 있는 포털에 사연을 구구절절 올리는 것이고, 이에 대한 공감을 널리 확산시키는 것일 수도 있겠다. 다만 이런 방법은 극단적인 사례를 제외하고 이슈화되지 못하거나 오히려 명예훼손이라는 역공격의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고 갑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쩍하지 않을 경우에는 그 실효성이 없기에 마냥 이런 방법에 의존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갑을관계의 불공정성을 시정할 수 있는 법적 구제수단은 어떤 것이 있을까.

사실 갑을관계에 있어서 계약은 불공정 내지 불공평한 상태에서 일단 당사자의 사인이나 도장이 날인되기 때문에 민사법적으로는 여간해서 그 처분문서의 효력을 깨기가 쉽지 않다. 불공정한 법률관계를 규제하는 대표적 조항인 민법 제104조는 '당사자의 궁박, 경솔 또는 무경험으로 인해 현저하게 공정을 잃은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고는 규정하고 있으나 법원은 객관적으로 급부와 반대급부 사이에 현저한 불균형이 존재하고 주관적으로 그와 같이 균형을 잃은 거래가 피해 당사자의 궁박, 경솔 또는 무경험을 이용해 이뤄진 경우에 성립하고 더 나아가 피해 당사자가 궁박한 상태에 있었다 하더라도 그 상대방 당사자에게 그와 같은 피해 당사자 측의 사정을 알면서 이를 이용하려는 의사, 즉 폭리행위의 악의가 존재하지 않으면 불공정 법률행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해 불공정한 법률행위가 무효로 되는 요건을 매우 엄격하게 해석하고 있다. 따라서 처음부터 법률행위의 불공정성만을 이유로 본안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갑을계약은 일단 성립됐으므로 그 효력을 다투기 위해 법원에 해당 계약 내지 갑의 일방적인 처분에 관한 효력정지가처분신청이 많이 제기되고 있으며 법원에서도 중대성과 긴급성이 상당 부분 소명되면 인용해 주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최근 연예인과 소속사 간의 전속계약효력정지가처분이 적지 않은데 일부 전속계약이 이른바 종신노예계약이라는 이유로 법원에서는 그 효력을 정지시킨 사례가 종종 있다.
이런 종류의 가처분은 실제 본안소송과 거의 동일한 효과가 있어 상당히 효과적인 대응방안이다. 그 외에도 한국공정거래조정원을 통해 일반불공정거래행위를 다루는 공정거래에 대한 조정신청, 약관분쟁에 대한 조정신청 그리고 대표적 갑을관계라 할 수 있는 가맹사업, 하도급사업, 대규모 유통업거래에 대한 각 조정신청을 통해 갑질에 대한 불공정성 여부에 관한 판단과 합리적인 조정을 구할 수 있다.


다만 이런 갑을관계의 궁극적 해결책은 법적 해결이 아니라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진부한 표현에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이성우 법무법인 중정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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