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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설 자리 줄어든 '다양성 영화'

박경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3.03 17:05

수정 2015.03.03 17:05

[여의나루] 설 자리 줄어든 '다양성 영화'

다양성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현재 관람객 500만명에 가까운 흥행을 기록하면서 다양성 영화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이 높아가고 있다. 2002년 '집으로', 2008년 '워낭소리'의 흥행에 이은 다양성 영화의 상업적 성공으로 최근에는 '아트버스터(Artbuster·예술성을 갖춘 블록버스터)'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하게 됐다. 분위기만 본다면 다양성 영화들은 우리 사회의 분명한 문화적 트렌드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다양성 영화란 무엇인가.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다양성 영화는 저예산으로 제작되는 독립영화, 예술영화, 다큐멘터리 영화 등 상업영화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정리되고 있다. 우리가 평소에 접하는 많은 상업영화는 금전적 이윤을 위해 제작되다 보니 관객들은 획일화된 시스템을 통해 제작된 비슷한 성격의 '재미있는' 영화를 만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자극적인 양념이 가득한 음식 같은 상업영화에 익숙해져 어느덧 우리 주변의 소중하고 담백한 가치들이 담긴 '의미 있는' 영화를 만나기 어려워졌다.
다양성 영화의 흥행 소식에 덧붙여 한국영화가 3년 연속 관객 1억명을 넘기며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매체의 보도 내용으로 대중은 다양성 영화를 비롯한 한국영화 전체의 르네상스가 열린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다. 1000만 관객의 영화가 이제 한 해에 2~3개씩 나오고 다양성 영화 한 개의 작품이 몇백만명의 관람객을 끌어모았다고 해 한국영화 전체가 건강한 발전을 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단적인 사례로 최근 한 달간 다양성 영화 관람객 순위 10위권에 5만명을 넘긴 영화는 단 한 편도 없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만이 500만명에 가까운 대박을 내고 있는 사이 다른 다양성 영화들은 상영 기회조차 부여받고 있지 못해 사라져 가고 있다. 실제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연출한 진모영 감독은 상영관 측에 자신의 작품 상영 횟수를 줄여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이는 다른 독립, 다큐 영화들과의 공생을 위한 것이었다는 후문이다. 상업영화에 치여 다양성 영화가 설 자리를 잃고 있는 것도 문제지만 다양성 영화 사이에서도 '아트버스터'라는 마케팅 용어를 통해 쏠림현상이 일어나고 있으니 참 아이러니하다.

이러한 상황 속 뜨거운 감자는 역시 대자본이 잠식한 영화 생태계의 현재다. 대기업들의 진출로 우리 영화는 양적 팽창과 함께 해외로 진출할 수 있는 좋은 기회도 마련했지만 소수가 독점하는 제작과 배급의 수직계열화로 인한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영화계 전반에 영향력을 가진 소수의 선택으로 제작자와 관객 모두 선택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양성 영화의 육성 방안을 찾는 문제는 더욱 다급한 과제 중 하나로 다가온다. 이러한 가운데 경기도가 몇 년 전부터 펼치고 있는 다양성 영화 지원 사업은 눈여겨볼 만하다.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 및 지역의 공공상영관과 협약을 맺고 일정 비율 이상의 다양성 영화를 상영케 해 독립영화 감독들에게는 대형 상영관에서의 활동 기회를 부여하고 관객들에게는 다양한 영화를 만나 볼 수 있도록 선택권을 제공했다. 선진국에 비해 다양성 영화를 만날 수 있는 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차선책이 아닌가 싶다.

다양성 영화는 이 사회의 문화적 다양성을 확산시키고 지켜내는 데 큰 역할을 하는 분야다.
또한 다양성 영화의 자유로운 상상과 다양한 기술적 실험은 상업영화에도 큰 모티브를 제공한다. 첨단 기술이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하려면 기초과학이 튼튼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 영화가 탄탄한 몸집을 키워 나가는 데 있어 다양성 영화는 꼭 필요한 자양분이다.
바로 이것이 정책입안자, 영화업계, 소비자 모두가 다양성 영화를 보호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이유임을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불러일으킨 전 국민적 관심 속에 상기했으면 한다.

서병문 경기콘텐츠진흥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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