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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때를 안다는 것

박경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3.04 17:41

수정 2015.03.04 17:41

[fn논단] 때를 안다는 것

군웅이 할거하던 춘추시대, 중원을 차지하려는 영웅호걸 간의 긴박감 있는 패권전, 그 절정은 오나라와 월나라 간의 싸움일 것이다. 오나라 왕 합려와 부차 그리고 월나라 구천이 '와신상담(臥薪嘗膽)', 역전을 거듭해가며 벌이는 복수전은 싸움의 치열함을 보여준다. 여기에 오나라의 오자서와 손무, 월나라의 범려와 문종이라는 책사가 전략을 짜고 서시라는 경국지색의 미녀가 등장해 극적인 효과는 배가한다.

기원전 496년 오나라 왕 합려는 월나라와의 싸움에서 화살을 맞고 중상을 입었다. 합려는 아들 부차에게 원수를 갚아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둔다. 이때부터 부차는 거친 장작 위에 누워 자며 복수를 다짐했다.
이 소식을 듣고 구천이 먼저 오나라를 쳤으나 오히려 패하고 만다. 구천과 신하 범려는 3년 동안 부차의 종으로 겨우 목숨을 부지했다. 이때 범려는 자신의 애첩인 서시를 부차에게 보내 미인계를 폈다. 부차가 서시에게 빠져 있는 틈을 타 속국을 약속하고 월나라로 돌아온다. 이때부터 구천은 치욕을 잊지 않기 위해 쓴 쓸개를 매달아놓고 이를 핥으며 절치부심 복수의 칼을 갈았다. 드디어 구천은 역전의 기회를 잡는다. 오나라 부차가 중원 대권을 위해 제나라를 공격하러 수도를 비운 틈을 타서 구천이 오나라를 공격한 것이다. 패한 부차는 오자서의 만류를 듣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자살한다.

오나라를 멸망시킨 일등공신은 단연 범려와 문종이었다. 이제 왕의 최측근으로 부귀영화를 누릴 차례에, 돌연 범려는 가족을 거느리고 주군 곁을 떠나겠다고 했다. 이를 만류하던 문종에게는 '토끼를 잡고 나면 토끼 쫓던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는 '토사구팽(兎死狗烹)'이란 말을 남겼다. 범려는 주군 구천이 "어려울 때는 생사를 같이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잘될 때 같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라며 월나라를 떠났다. 범려의 조언을 무시했던 문종은 결국 토사구팽 당했다.

범려는 가족과 함께 배를 타고 제나라의 해안지방에 내려와 성과 이름을 모두 바꾸고 평민으로 살았다. 열심히 농사 짓고 가축을 길러 몇 해 후 그는 큰 부자가 됐다. 그에 대한 평판을 들은 제나라 사람들은 그를 재상으로 모셨다.

그러자 범려는 모은 재산을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패물 몇 개만을 가지고 다시 그곳을 떠났다. 평민으로 분에 넘치는 영화를 오래 누렸다가는 화가 생길 것이라고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가 다시 정착한 곳은 여러 나라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도(陶)라는 교통 요충지였다. 그는 여기서 물자와 교역이 활발히 이뤄지리라고 보고 상업을 벌였다. 그는 물건을 사고팔 때를 잘 맞춰 큰 재산을 모았다. 사마천은 '사기'에 그가 19년에 걸쳐 세 차례나 큰돈을 벌었으며 두 차례에 걸쳐 가난한 이웃들에게 부를 아낌없이 나눠줬다고 썼다. 그는 자신의 부를 모으고 함께 나누는 방법을 자손들에게 전수해 자손대대 부를 이어갔다.

범려는 때를 잘 알았다. 정치할 때도 떠날 때를 잘 알았고, 농사나 장사를 할 때도 물건을 사고팔 때를 잘 알았다. 때를 잘 안 만큼 그는 큰 부를 이룰 수 있었다.
또 그는 부를 오래 누리기 위해서는 넘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도 잘 알았다. 자신에게 부와 영예가 과도하다 싶으면 이를 가난한 이웃들과 나누었다.
이것이 범려가 가르쳐준 부를 오래 유지하는 방법이다.

이호철 한국거래소 부이사장 경영지원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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