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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칼럼] 정유업 쇠락 지켜만 볼 것인가

최갑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3.09 17:03

수정 2015.03.09 17:03

[차장칼럼] 정유업 쇠락 지켜만 볼 것인가

"입사할 때만 해도 정유사는 부와 명예의 상징이었던 걸로 기억됩니다. 지금은 욕 안 먹으면 다행이죠. 정유사들이 자초한 면도 있겠지만 그래도 국가 경제발전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았던 산업인데…." 국내 굴지의 정유사에 근무하는 20년차 A부장은 최근 식사자리에서 푸념을 늘어놓았다. A부장의 말끝에는 과거 화려했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애절함도 묻어났다.

정유사가 어떤 기업인가. 평균 직원 연봉이 억대에 육박하는 대표적인 '신의 직장'이다. 1990년대 초반 학번인 기자도 취업준비생 시절 정유사에 취직한 친구들을 부러워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정부가 1960년대부터 국가 사업으로 육성해 경제성장기의 든든한 버팀목이 됐던 정유업은 '수출 효자'의 대명사였다.
그만큼 정유사 직원들의 자긍심과 애국심은 대단했다.

하지만 새로운 세기를 맞으면서 정유업은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다. 원전과 천연가스 등에 밀려 석유에너지 소비는 갈수록 줄고 지구온난화 해결이라는 대명제 아래 대내외적인 신재생에너지 육성정책의 거대한 파고에 내몰리면서 정유사들의 현실은 우리 관심 속에서 멀어졌다.

정유사들이 직면한 경영난의 현주소는 매우 심각하다. 2011~2012년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품목별 수출액에서 1위를 차지했던 석유산업은 2013년 수출액이 전년 대비 5.9%나 감소하면서 정보통신(IT)에 이어 2위로 밀려났다. 2012년부터는 정유사들이 정유사업에서 적자의 늪에 빠졌다. 국내 정유사들의 정유부문 영업이익률 추이를 보면 2010년과 2011년 2.2%였다가 2012년 -0.3%, 2013년에도 -0.01%로 영업적자를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유가하락의 직격탄을 맞은 지난해는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 등 국내 정유 3사가 정유사업에서 입은 손해가 2조6000억원에 이른다. 그나마 석유화학과 윤활유 등 비정유사업에서 돈을 벌어 정유사업의 적자를 메웠다. 작년 이들 3사의 전체 영업손실이 9000억원 수준이라는 점에서 본연의 업인 정유사업 불황은 그 끝을 헤아리기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정제공장을 가동할수록 손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마당에 국민들의 시선도 싸늘하다. 지난해 유가 하락 속에 200일 넘게 떨어지던 기름값이 최근 오르자 비난의 화살이 온통 정유사로 쏟아지고 있다. 기름값이 국제 석유가격과 연동하는 구조에서 정유사도 억울한 면이 있다. 기름값의 60%를 차지하는 유류세의 실체를 감춘 채 정유사와 주유소에 책임을 떠넘기려는 정부의 포퓰리즘 행정 앞에 제대로 반박조차 못하는 '벙어리 냉가슴'도 답답할 노릇이다.

더 이상 석유산업의 몰락을 방치해선 안된다.
아무리 석유 비중이 과거보다 낮아졌지만 석유산업은 우리나라 제조업의 전방산업이다. 석유산업을 통한 안정적인 연료와 기초소재의 공급은 모든 제조업 경쟁력의 기본이고 전제다.
특히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전략물자인 석유산업의 쇠락은 국가경쟁력 저하로 직결될 수밖에 없다.

cgapc@fnnews.com 최갑천 산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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